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61. 정부 정책과 방사성의약품 개발의 미래


여름방학이 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지난 7 15일 하루 동안 모두 모여 '대학과 병원발전 세미나'를 가졌다. 이는 연례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올해에 집중 논의된 사항은 '국립대학교병원을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하는 사항과 '서울대학교병원특별법 폐지'에 관한 사항이었다.

필자는 교육부의 BK21 사업의 수혜자(대학원 지도학생이 장학금과 연구결과 발표를 위한 외국학회 참석 경비를 지원받음)로서 이러한 정부의 계획이 장래에 필자의 방사성의약품 개발 연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참석하였다.

국립대학교병원은 현재 소속이 교육부이다. 의학 발전을 위하여 현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차세대의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연구도 수행하지만 차세대의 리더를 양성하는데 더욱 더 힘을 써야만 할 것이고, 이는 바로 교수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차세대의 훌륭한 의사와 의학자를 배출하기 위하여 국립대학교병원을 교육부에서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립대학교의 복지부 이관은 그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된 목적은 '의료의 공공성 확충'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에서는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수준이 아직 미흡한 수준이고, 이를 확충하여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공공의료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의약분업, 건강보험 등 각종 정책을 실시하여 왔는데, 이러한 정책이 부작용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얻기도 하였는데도 정부에서는 더 큰 효과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공공의료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부에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혹은 염가 진료를 중요시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의미의 공공의료는 현재 국립의료원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보건소에서 주로 수행하고 있고, 의료보호 환자 등은 국립대학교병원에서도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항은 복지부 소관 업무이지만 국립대학교병원이 교육부 소속이니까 정부의 명령이 제대로 잘 먹혀들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만약 국립대학교병원을 복지부로 이관하고 보건소처럼 저소득층을 위한 진료를 주로 하게 정부에서 명령한다면 우수한 의료 인력 수만명을 한순간에 확보하여 공공의료를 실시하게 되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말로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수의 국민들을 만족시켜줄 수가 있는 기막힌 정치가 아닌가.

그러나 만사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정책에는 시소처럼 상대적인 양면이 있어서 한 쪽을 진흥시키면 다른 한쪽을 희생해야 한다.

교육부에서는 국립대학교병원의 교수를 다른 대학 교수와 마찬가지로 여기기 때문에 임용 또는 승진을 위한 조건으로 각종 교육 및 연구결과를 평가하게 하고 있다. 이는 환자 진료를 주로 하는 교수들에게는 매우 괴로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대학병원은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너무 많아 환자 진료에도 힘겨운데 세계 수준의 연구 논문도 써야 하고 교육도 하여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부 이관은 국립대학교병원 교수에게는 좋은 유혹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에서 서울대학교병원의 교수들은 "복지부 이관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였다. 또한 "전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하여 결사 저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고, "집행부 사퇴도 불사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가가 부강해지려면 각종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공업, 중화학공업, 반도체, 정보 등의 산업을 차례로 발전시켜 후진국을 탈피해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지금까지 발전시켜 온 이러한 제조업 분야는 앞으로는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으로 선진국 도약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에 의료, 관광, 공연, 금융, 디자인 등의 서비스 산업이 앞으로 중요한 산업으로 부각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 산업의 기반은 잘 이루어진 교육을 통한 인재의 양성에 있다. 국립대학교병원은 앞으로 의료산업 발전의 중추로서 우리나라를 이끌고 나가야 할 위치에 있다.

의료산업은 국제 경쟁이 매우 치열한 분야이다. 이는 제약, 의료기기 등의 제조업과 의료서비스 등의 복합체이다. 따라서 의료산업이 제대로 확립이 되지 못하면 제약이나 의료기기 산업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는다. 이 중 제약산업이 의료산업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나 생각해 보자.

제약산업은 의약품을 제조하는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개념은 20세기 초중반까지의 개념이고,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는 첨단지식에 의한 고부가가치 창출산업이라는 개념이 선진국에서부터 자리 잡았다. , 약은 단순한 화학물질이라기보다는 어떠한 제품보다도 더 고도의 지식이 집약된 결정체인 것이다. 예를 들어 '아스피린'은 한 알에 수십원 정도밖에는 하지 않지만 신약인 '글리벡'이나 '비아그라' 같은 것은 그 보다 수천~수만배 비싸다.

이러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무엇인가. 글리벡이나 비아그라 약품 자체를 만드는데는 한 알에 수백원 밖에는 하지 않지만, 이것이 사람에 써서 안전한지, 약효는 충분한지, 얼마만한 양을 투여해야 좋은지, 어떠한 부작용이 있는지, 또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할 수는 없는지 등의 지식을 부가하면서 수천에서 수만 배로 그 가치가 증가되는 것이다.

의약품을 개발할 때 가장 많은 연구비가 소요되어 지식을 증대시키는 분야는 바로 임상시험 분야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임상시험연구비가 커지자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국제적인 제약회사로부터 임상시험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고, 국내에도 그러한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임상시험은 반드시 의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임상시험은 아무 의사나 책임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전문의로서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하여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만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는 수십년의 교육기간과 연구시간이 필요하고 투자되는 자금도 최하 수억에서 수십억원 이상이 된다. 국립대학교병원은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인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며, 이러한 차세대의 리더를 교육하는 곳이다.

지금도 국내 의료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여 외국으로 진료 받으러 나가는 환자가 많아 연간 수천억의 외화가 지출이 되고 있다. 의료 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그 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의료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내 대학병원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국립대학교병원이 보건소의 역할을 맡도록 하여서는 국제 경쟁력이 저하될 것은 명백하다.

이는 국가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전쟁 중에 항공모함보고 전방을 벗어나서 병력 수송에 나서라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항공모함이라고 병력수송을 못 할리는 없을 것이다. 단지 그 동안에 아군이 적군에게 궤멸당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국립대학교병원의 복지부 이관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정부의 정책이 저소득층의 의료의 질 향상이라는 단기적인 목적에는 성공하더라도, 수년 후에는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몰락을 가져올 위험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인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립대학교병원의 복지부 이관에 45천억원의 돈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럴 돈이 있으면 당장 국립의료원과 전국의 보건소에 우수한 인력을 채용하고, 직원들의 봉급도 획기적으로 올려주고, 시설도 확충하여 주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 아닐까.

2005년 8월 1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