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하다보면 서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아이디어를 독립적으로 내어 결과를 발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학회를 참석하든지, 저널을 받아 보면 깜짝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한 예를 올해 6월에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열린 '세계방사성약품화학 심포지엄'에 참석해서도 겪었다.
작년 6월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핵의학회에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단백질과 펩타이드에 대한 불소-18의 새로운 표지법을 발표하였다. 이 방법은 종래의 다른 단백질 표지법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여 앞으로 단백질이나 펩타이드를 불소-18로 표지할 때 가장 먼저 고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는 즉 이 분야의 새로운 표준방법이 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적인 합성 방법은 간단히 설명하면, 단백질이나 펩타이드에 먼저 HYNIC을 결합하여 둔다. 그리고 사이클로트론으로 생산한 불소-18로 N,N,N-트리메칠벤즈알데히드를 표지하여 F-18-플로로벤즈알데히드를 합성한다. 이는 합성 방법이 잘 알려져 있어서 이미 널리 사용이 되고 있는 물질이다. 국내에서는 성균관의대의 최연성 교수가 도입을 하여 콜린에스터레이즈 저해제 등의 표지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의 합성을 시도할 때 최연성 교수의 조언을 많이 구하였다.
마지막 과정에는 이 두 가지를 섞어 주기만 하면 하이드라존이라고 하는 화합결합을 형성하면서 표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원래 단백질의 불소-18 표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선 PET을 사용하여야 하므로 가격이 비싸서 널리 보급이 되기 어렵고, 단백질의 경우 체내에서 소실되는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인체 투여 후 매우 오랫동안 기다려야 목적 부위에 방사능이 축적된 영상을 찍을 수 있는데 불소-18은 반감기가 110분으로 너무 짧아 오래 기다릴 수가 없으며, 또한 널리 사용되고 있는 FDG보다 각종 영상에 더 뛰어난 방사성의약품이 개발되기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 년 전부터 PET이 보급되는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고, 또한 단백질보다는 분자량이 작아서 체내 소실이 훨씬 빠른 펩타이드를 이용한 영상이 더욱 더 중요시되고 있으며, 또한 펩타이드는 종류가 매우 많고 앞으로도 새로운 것이 계속 개발될 것이므로 FDG로 불가능한 다른 영상법을 개발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펩타이드에 대한 불소-18을 표지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이러한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단백질 또는 펩타이드에 하이드라존 형성반응을 이용하여 불소-18 표지법 |
그런데 펩타이드를 불소-18로 바로 표지를 하면 좋겠지만 펩타이드는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가격도 매우 비싸 마음 놓고 실험하기가 어려워서 우선 혈액풀 영상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인혈청알부민을 표지하기로 하였다. 이는 분자량이 커서 체내 소실률이 매우 느리다. 따라서 얼핏 생각하기에는 전혀 용도가 없는 것 같지만 혈액풀 영상은 체내 소실이 느릴수록 좋고, 또한 주사 후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영상을 얻으면 되니까 적용 분야는 충분히 있는 셈이다. 또한 전세계에는 필자와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미 실험을 하고 있는 다른 그룹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공연히 구하기 힘든 펩타이드를 가지고 실험을 하면 우리가 경쟁에 이길 가능성이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내가 NIH에 있을 때 수퍼바이저였던 백창흠 박사님의 쓰라린 경험담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항체에 대한 인듐-111 표지가 관심의 초점이었고, 백창흠 박사님도 일찍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을 시작하셨는데 당시에는 매우 구하기 힘든 단일클론항체를 이용하여 실험을 하였기 때문에 진도가 매우 느렸다. 그렇지만 나토비치 박사는 구하기 쉬운 폴리클론항체를 이용하여 더 늦게 시작하였지만 빨리 실험을 끝내서 저널에 발표를 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공식적으로 나토비치 박사가 단백질에 대한 인듐-111 표지법을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박사과정 학생이 단백질에 대한 새로운 불소-18 표지방법을 열심히 연구를 하여 좋은 결과가 나와서 작년 미국 핵의학회에 제출했더니 구두 발표를 하도록 채택이 되었다. 이는 미국핵의학회서도 이 방법의 중요성을 인정해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발표를 한 학생은 그 연구 결과를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하여 올해 2월에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또 다른 박사과정 학생은 RGD라고 하는 신생혈관 부위에 결합하는 펩타이드를 이 방법으로 표지하는 실험을 하여 올 해 6월에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열리는 세계방사성의약화학 심포지엄에 발표를 하러 갔다.
그런데 여기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우리 방법을 사용하여 옥트레오타이드라고 하는 펩타이드를 표지한 연구 결과를 포스터로 발표하였다. 그렇게 빨리 다른 사람들이 우리 방법을 적용하다니 참으로 놀랍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이를 새로운 방법이라고 하여 마치 자기들이 최초로 개발한 양 발표를 하여서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우리가 작년에 그 방법을 사용하여 발표를 한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발표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만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이메일로 우리가 작년에 이미 발표한 방법이니까 이는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고 연락을 하기로 했다. 아마도 그 사람들도 우리가 먼저 결과를 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인혈청알부민을 이용하여 실험했더라면 더 빨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05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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