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9일 금요일

50. 反日감정이 높은 때 일본에서 열린 국제원자력회의


지난 4 4일부터 7일까지 일본 동경 근처의 지바라는 곳에 있는 일본의 방사선의학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Radiological Science, NIRS)를 다녀오게 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앞으로 2년간 아시아 각국에서 교육생을 모아 핵의학에 대한 교육을 할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한국의 대표로 간 것이다. 참석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월남, 태국, 필리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미얀마 등이었다.

일본 여행은 여러 번 했지만 이번은 독도 문제와 교과서 문제로 국내의 반일감정이 높아져 데모를 심하게 하고 있는 중에 다녀오게 되어 신경이 쓰였다.

나는 서양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미국이나 유럽 여행을 하면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하는 편이다. 미국은 그래도 다양하여 덜 하지만 유럽은 한 3일 쯤 있으면 식사 때는 김치 생각이 간절하고, 또 제발 치즈 안 들어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음식 고생이 거의 없다. 김치가 없더라도 일본 전통음식인 즈께모노, 미소국, 낫토 등은 우리나라의 장아찌, 된장국, 청국장 같은 것들과 비슷하고, 밥도 우리나라 밥과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모든 것이 모두 태고적에 우리나라에서 넘어 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벼농사도 한반도에서 먼저 시작이 되었고, 고구려벽화에 장 담는 그림이 있다고 하니 장을 이용한 즈께모노니, 미소국이니 하는 것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건축방법, 옷 만드는 것, 한자, 도자기, 젓가락, 기마문화 등 일본의 전통적인 것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지 않은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러한 면에서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대하여 긍지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첫날에는 각자 자기나라의 핵의학 현황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파워포인트 파일의 배경화면에 우리나라 국보 78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넣어서 작성하였다. 이는 일본 국보 1호를 연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많이 있는데 그 중 2개가 국보 78호와 83호로 지정이 되어 있고, 78호는 여성적이고 우아한 반면, 83호는 남성적이고 간결하다. 일본 국보 1호가 목재로 된 반가사유상인데 이는 우리나라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매우 닮았다. 이는 야스퍼스라는 철학자가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극찬을 했다고 해서 유명하다. 재료를 검사해 본 결과 당시 일본에서 조각에 많이 쓰는 삼나무가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는 적송인데다가 조각한 기법이 우리나라의 기법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유력한데 일본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옹졸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러한 증거들이 미리 드러났더라면 국보로 지정하지 않았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에게 '일본 국보 1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보 1호는 남대문'이라고 누구나 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나는 미국에서 일본사람과 같이 실험을 했기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임진왜란은 풍신수길이 일으켰고, 조선 병사들은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의 군대에 의하여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명나라 군대가 와서 전쟁은 소강상태로 들어갔고 많은 도자기공을 끌고 와서 도자기를 일본에서 만들기 시작하였다. 풍신수길이 죽으면서 조선에서 철수하였다. 풍신수길은 일본의 가장 존경받은 영웅중의 한사람이다. 이것이 일본사람들이 대부분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후지바야시라고 하는 방사성의약품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후쿠이 대학의 교수가 이 회의에 참석하여 나에게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의 군대와 싸워서 이긴 유명한 장군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을 건네 왔다. 일본 사람 중에서 이정도 한국에 대하여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 여러 장군이 이겼는데 그 중 이순신 장군이 유명하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해군과 23회 싸워 23회 승리를 하여 일본 해군이 꼼짝 못하게 묶어 두었는데 이는 일본의 도고 제독이나 영국의 넬슨제독보다 더 위대한 승리였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 졌으면 풍신수길의 기세로 보아 중국도 충분히 점령하였을지도 모른다. 이 승리는 특히 고려 말에 도입한 화포를 개량하여 배에다 설치하여 화력에서 우수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였더니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한 눈치였다. 일본 교과서에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같이 실험하던 일본사람에게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한 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해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 교과서에는 우리나라를 가급적 뒤떨어진 것처럼 쓰고 과거부터 자기들이 우리보다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려고 애쓴다. 그 결과 독도도 비록 울릉도에 가까이 있다고 하나 일본에도 가까이 있는데 더 우수한 문화를 가진 일본의 땅이 아니라는 것은 믿을 수 없다거나, 대마도도 한국에 더 가까이 있지만 일본 땅이 아니냐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가지게 만드는 것 같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나라들은 중국과 일본을 빼면 모두가 우리나라의 국력에 많이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이라 내가 우리나라의 핵의학 현황에 대한 발표를 마치자 모두 우리나라를 일본과 같은 수준의 선진국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각각 1회씩 교육을 하기로 하였지만 우리나라는 2회를 교육하기로 했는데 이는 내년에 '세계핵의학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기 때문에 이 학회와 합쳐서 한번 교육을 실시하고 따로 한번 실시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2005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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