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늄-188을 적용할 분야를 더 찾아보다가 연세대학교병원 이종두 교수와 원자력연구소 박경배 박사가 세계 최초로 고안하여 개발한 홀뮴-166 패치로 피부암을 치료한 논문이 생각났다. 학회에서 발표하는 내용을 보니 결과도 매우 좋아서 관심이 더 커졌다.
원자력연구소에서 제조한 홀뮴-166 패치는 소위 말하는 반창고에 홀뮴-166이 포함되게 만들어서 피부암 부위에 맞게 잘라서 붙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포함된 홀뮴-166에서 나오는 베타선에 의한 방사선량과 조사시간을 계산하여 적당한 시간동안 암 부위에 붙여 두었다가 떼어내게 되어 있다. 환자는 시술 중에 반창고를 붙이는 느낌 외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고, 시술 후 며칠이 지나면 피부암조직이 떨어져 나가며 치료가 되어 매우 편리한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피부암 환자가 매우 드물지만 백인들에게는 가장 흔한 암이다.
우리 실험실에서는 '레늄-188을 사용하여 유사한 것을 만들 수 없을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패치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냥 종이 같은 것에 레늄-188을 표지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였다. 특수한 종이에 양쪽성 킬레이트를 결합하여 레늄-188을 환원시켜 표지를 할까 생각하다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개발한 레늄주석콜로이드를 만들어 여과지에 여과하면서 붙이면 되겠다는 것이다.
레늄주석콜로이드는 실온에서 표지하는 것보다 끓이면서 표지하면 입자가 커지는데 그래도 1마이크로미터 정도는 거를 수 있는 여과지를 사용해야 하므로, 밀리포어 필터를 이용하도록 하였다. 밀리포어 필터는 주로 니트로셀룰로즈 같은 것으로 만드는데 이는 유기용매에 녹는 성질이 있으므로 일반 여과지에 알코올이나 아세톤 같은 것을 적셔서 레늄주석콜로이드를 여과한 밀리포어 여과지를 올려서 녹여 보라고 연구원에게 시켰더니 여러가지로 실험을 하여 알코올이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레늄주석콜로이드가 알코올에 녹은 밀리포어 여과지에 들러붙고 밀리포어 여과지는 일반 여과지에 들러붙게 되어 레늄주석콜로이드는 일반 여과지에 표지를 한 것처럼 된다. 이렇게 만든 레늄표지 여과지를 이용하여 피부암 동물모델에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동물실험을 하기 전에 레늄표지 여과지에 의한 방사선량을 계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원자력의학원의 김은희 박사는 이 분야에서 권위자다. 특히 몬테칼로 시뮬레이션법으로 전에 원자력연구소에서 만든 홀뮴 패치의 방사선량도 계산해 준 바 있다. 그래서 '우리 레늄표지 여과지의 방사선량도 계산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흔쾌히 응하여 방사선량을 계산해 주었다.
연구를 하였으면 연구결과를 논문을 써서 학술잡지에 발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연구원에 따라서는 실험만 열심히 하고 논문 쓰는 것을 등한시 하는 연구원이 있다. 대체로 대학원에 다니지 않는 연구원이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 레늄표지 여과지를 실험한 연구원이 그러한 부류에 속했다.
그래서 이를 논문으로 쓰지 않고 세월이 흘렀는데, 어느날 이트륨-90 콜로이드를 우리가 한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여과지에 표지하여 피부암을 치료한 실험이 영국의 핵의학회지에 실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결국 여과지에 베타선 핵종을 최초로 표지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논문을 써서 같은 영국의 핵의학회지에 보냈다. 얼마 후에 출판을 거절하는 편지가 왔는데 그 이유는 '실험 결과로 넣은 생쥐의 사진에서 종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동물학대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레늄표지 여과지로 치료하지 않은 그룹에 해당하는 쥐에서 볼 수가 있었다. 동물에 종양을 너무 크게 키우든지 아니면 너무 여러 개의 종양을 한 쥐에 키우면 이는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진을 삭제하고 다시 미국의 방사성동위원소 이용에 관한 학술지에 투고하여 출판을 할 수가 있었다.
과거에 비하여 요즈음의 대학원생들은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는데 훨씬 적극적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을 만나 보면 모두 다 좋은 논문을 많이 발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실험을 할 때도 항상 논문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실험을 하여 실험이 끝나면 바로 논문을 쓰는 경우가 많다. 논문 쓰는 것을 소홀히 하면 세계 최초의 아이디어를 내어 실험을 하고도 세계적으로는 인정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거나 현재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명심하여야 할 바다. 대학원에 다니는 것은 실험을 하기 위해 다닌다기보다는 논문을 쓰기 위해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2004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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