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8일 목요일

27. 레늄-188 표지 주석콜로이드


레늄-188 제너레이터를 서울대병원에 도입한 후 가장 먼저 시도한 방사성의약품은 레늄-188-황콜로이드였다. 콜로이드성 베타선 방출핵종은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관절에 주사를 할 경우 염증을 일으키는 세포를 죽여 치료가 된다. 이러한 목적으로 가장 먼저 사용했던 것은 금-198-콜로이드였는데, 반감기가 너무 길고 감마선도 너무 강하게 나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폭을 준다는 단점 외에 콜로이드 입자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관절에서 바깥으로 새어 나온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어서 사용이 중단된 상태였다.

문헌 조사를 하여보니 레늄-188-황콜로이드는 이미 대만의 연구진들이 만들어서 보고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그 문헌대로 제조하였는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만든 레늄-188-황콜로이드는 여기 저기 달라붙는 성질이 있어서 주사기로 취하여 주사를 하면 대부분이 주사기에 붙어 있고 빠져나오는 양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는 콜로이드 입자 자체가 지용성이 강하여 서로 응집이 되고 또한 주사기 내벽 표면에 달라붙기 때문인 것 같았다.

원래 테크네슘 주석 콜로이드는 테크네슘 황콜로이드 대신에 사용하기 때문에 비슷한 화학적 성질을 가진 레늄 주석콜로이드도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실험을 하여 보았다. 그랬더니 레늄 주석콜로이드는 레늄 황콜로이드보다 표지 효율도 높고, 또한 주사기에 달라붙는 성질도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를 토끼의 관절에 주사하였더니 관절에만 계속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여 관절염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초기에는 아스피린과 같은 소염성 진통제를 복용하여 치료를 하지만 점점 심해질수록 다른 약을 사용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약은 스테로이드로서 이는 장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심각하다. 스테로이드제를 관절에 직접 주사하여도 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 환자는 인공관절을 수술로 이식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서울대병원 내과 송영욱 교수는 류마티스 질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데 우리가 레늄-188-주석콜로이드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떠한 약을 사용하여도 효과가 별로 없어 수술 이외에는 별 도리가 없는 환자들을 이를 이용하여 치료하기로 하였다. 주석콜로이드는 테크네슘을 표지하여 간영상 등에 사용을 하는 것이고, 레늄-188은 미국에서 몇몇 환자에 투여하여 논문도 발표가 된 것이어서 약사법상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의 임상시험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서 20명의 환자에 투여하였다. 초기에는 별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3개월 정도에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1년째에는 약 80%의 환자에서 효과가 나타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환자는 매우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그 결과를 '류마티스학회'에 발표하였다.

그 때 원자력연구소의 홀뮴-166을 이용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 결과도 동시에 발표가 되었는데 우리 것이 더 효과가 좋아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불법임상시험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매우 유명한 국회의원 한 분이 문제를 삼으면서 국정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나와 송영욱 교수는 식약청 국정감사에 나가서 해명을 하게 되었다. 문제제기를 한 국회의원은 '이러한 임상시험을 안전성과 유효성을 식약청에서 허가 받지 않고 실시하였으므로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 의사의 처방에 의한 시술에 해당하며 이러한 의료행위는 식약청의 허가사항이 아니고 병원내의 임상시험위원회의 허가사항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방사성의약품을 일반 대중에 공급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환자에게만 처방에 의하여 제한적으로 투여하는 것은 조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허가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 병원에서는 수술, 분만, 혈관조영술 등과 같이 의약품 투여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의료행위가 많은데, 그러면 그러한 의료행위도 식약청에서 간섭해야 하는가. 수술장에도 제약회사와 같은 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시설을 해야 하는가. 그렇게 되면 의료행위를 규제하여 정부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것인데, 그 결과는 국민 의료비용의 증가 및 의학 발전 저해 등의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로 임상시험은 식약청의 허가를 받고 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약사법 26조의 4가 추가되었다. 이는 약사법 26조의 1과 그 하부 규정에 이미 모두 포함이 되어 있는 내용을 한 번 더 구체적으로 강조하면서 좀 더 범위를 넓힌 내용이고, 앞으로 의학적 연구 분야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조항으로 보인다. 그래서 곧바로 이 조항에 대한 예외 규정들이 많이 만들어지긴 했어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악법'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을 겪은 다음 某 제약회사가 레늄-188-주석콜로이드의 약효를 인정하여 식약청에 허가를 받아 임상시험을 수행하기로 하였다.

연구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연구가 아닌 엉뚱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다. '새로 개발한 방사성의약품을 어떻게 사용할 수가 있을까' 하여 궁리를 하다보면 약사법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고, 그러면 길이 있을 듯 하다가도 국내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하고 그러기를 계속 반복해 왔다. 이러한 과정은 연구에 비하여 재미가 없고, 하기도 싫으며,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정말 괴로운 작업이다. 또한 다른 것을 발명하였으면 쉽게 응용하여 제품도 만들고 할 것인데, 방사성의약품은 발명해봤자 임상 적용을 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괜히 애만 쓴 것 같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음에 이야기하겠지만 우리가 개발한 레늄표지 간암치료제를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서 세계 10개국에서 임상시험에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공급하여 간암 치료를 성공시키자 또 다른 과제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레늄-188-주석콜로이드를 이용한 류마티스관절염 치료 과제를 만들어 세계 각국에 공급을 하는 중이다. 참여국들은 태국, 인도, 콜롬비아, 필리핀, 말레이지아, 중국, 아르헨티나 등인데 약물치료가 불가능한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를 레늄-188-주석콜로이드를 이용하여 치료하는 것이다.

2004년 10월 11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