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8일 목요일

29. 간암 치료제 개발 2


IAEA에서 국제 간암 치료 연구과제를 시작할 때 나는 처음에는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을 개발하자는 것으로 알았으나 나중에 보니 내가 개발한 방사성의약품을 세계 각국에 보내어 실제로 간암 치료에 사용한다는 프로그램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새로 개발한 방사성의약품을 사람에 사용하려면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파디 박사에게 "식약청 허가를 받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우리는 허가를 받을 자금도 허가에 관련한 인력도 없다"고 했더니 그는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왜냐하면 이 계획에 참여하는 나라는 모두 병원 자체의 윤리위원회 같은 기구만 통과하면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이라도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여국은 싱가포르, 호주, 베트남, 말레이시아, 몽고, 중국, 인도, 콜롬비아, 필리핀, 태국 등이었고, IAEA와 무관하게 벨기에가 독자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쥐 실험을 했을 때 레늄을 표지한 TDD가 조직에 축적이 된 다음 오랫동안 남아 있지 못하고 자꾸 빠져 나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중대한 문제여서 최대한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과제 전체를 취소해야하고 따라서 국제적인 신용을 잃게 될 위기에 놓였다.

암 조직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문제는 지용성이 충분하지 못하여 그런 것이라는 추측을 하였다. 그래서 지용성이 강한 여러 가지 종류의 알킬기를 TDD에 결합하여 유도체를 합성하기 시작하였다.

콜롬비아에서 투히요 박사가 간암 환자에
레늄-188-HDD-리피오돌을 투여하고
분포를 영상으로 찍은 사진.
 간암조직에 강한 방사능이 모여 있고
갑상선과 방광에 약한 방사능이
흐리게 보인다.
그 무렵 싱가포르 제너럴 병원 핵의학과 순드램 박사가 IAEA의 간암 치료 연구 임상 분야의 책임자로 지정되어서 연구 일정 때문에 새로 합성중인 화합물들을 실험해 볼 여유도 없이 레늄 표지법을 가르쳐 주러 갔다. 레늄 표지는 잘 되었는데 이를 돼지의 간동맥으로 투여하고 감마선 촬영을 해 본 결과 쥐 실험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조직에서 레늄이 빨리 빠져나오는 것을 관찰하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순드램 박사에게는 우리가 이를 개선한 화합물을 개발 중에 있다고 하고 귀국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드램 박사도 실망하지 않고 나를 격려해 주었다.
새로 합성한 화합물들로 쥐에 투여하여 실험해 본 결과 TDD에 탄소가 16개인 알킬기를 결합한 HDD라는 화합물이 간조직에 충분히 오랫동안 축적이 되는 것을 발견하였고, 연이은 간암 유발 토끼 실험에서도 같은 현상을 발견하여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토끼 실험에서 간암에 대한 효과가 매우 좋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더욱 더 치료 효과에 대한 자신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이를 주사용 바이알에 냉동 건조한 형태로 만들고 무균시험과 발열성물질시험 등을 거쳐 제품을 만들어 세계 각국으로 국제특급우편으로 발송하였다. DHL이나 FEDEX는 가격이 비싸고 외국에서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 우리나라 우체국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나라들 중에서 베트남이 가장 열성적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과 좀 닮은 기질이 있고, 특히 민족주의 성격이 강한 듯 했다. 우리나라도 국립암센터의 강건욱 박사가 참여를 하려다가 식약청 허가 문제가 걸려 포기를 하고 말았다. 이 치료의 결과는 간암조직에 얼마나 정확하게 리피오돌을 투여하는가에 달려 있는데 이 기술은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이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참여를 하면 매우 좋은 효과를 볼 수가 있을 텐데 애석한 노릇이었다.
연구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 순드램 박사가 결과를 종합하여 인도의 뉴델리에 모여 발표를 하였다. 수술을 할 수 없는 70명의 간암 말기 환자에 투여하여 1년 생존율이 20% 정도가 되었다. 순드램 박사에 의하면 치료하지 않았을 경우 이 환자들의 1년 생존율은 거의 '제로'라고 한다.
따라서 효과는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결과에 고무되어 IAEA의 파디 박사는 연구 과제를 1년 더 연장하여 지금도 계속 간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IAEA 연구과제와는 별도로 벨기에 겐트 병원의 드 보스 박사에게서 TDD를 공급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내가 TDD에 관하여 쓴 논문을 보고 좋은 방사성의약품으로 생각하고 공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에 개선된 HDD가 개발이 되었고 이를 공급해 주겠다고 하였다. 유럽에는 이탈리아에 간암 환자가 가장 많은데 거기서 간암을 주로 치료하던 전문의가 자기들 병원으로 와서 많은 이탈리아의 간암 환자들이 그 병원으로 몰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벨기에에도 HDD를 보내 주었는데 독자적으로 간암 치료를 하여 좋은 논문도 발표하고 더욱 더 나아가 제2상 임상시험도 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핵의학과에 와서 인류에 도움이 되는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더욱 더 뛰어난 방사성의약품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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