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학은 다른 자연과학과 협력이 잘 이루어져야만 발전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한 의학이다.
다시 말하면 핵의학은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또한 새로운 영상 장비가 만들어져야 발전할 수 있다. 방사성의약품 분야는 화학 및 생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핵의학영상 장비는 물리 및 공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핵의학은 앞만 보며 참으로 열심히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발전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두드러진다. 핵의학 분야의 국제적인 발전을 실감할 수 있는 척도 중의 하나로 외국 학회 발표를 들 수가 있다. 물론 외국 학회 발표 숫자가 학문적인 능력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척도라고 해서 더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연구를 열심히 하여 좋은 결과가 나오면 우선 학회에 참석하여 발표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발표를 하게 된다.
핵의학 관련 학회 종류가 많지만 가장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최신 결과가 발표되는 학회는 '미국핵의학회'이다. 미국핵의학회에 발표를 하려면 초록을 제출하여 심사를 받고 내용이 우수하여 선정이 되어야 발표를 할 수가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 사람이 미국핵의학회에 선정되어 발표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만큼 한국의 핵의학 연구 수준이 국제 수준에 비하여 낙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국핵의학회에 발표를 하러 가면 미국의 교포 핵의학자들이 돈을 모아서 상품도 주곤 하였다. 그런데 <그림> 에서 보다시피 그 숫자가 1990년대 중반부터 급증하여 지금은 연간 100건이 넘게 발표를 한다.
미국핵의학회 연도별 한국 연구결과 발표수 (단위: 건) |
작년에 한국에서 106건의 연구 결과를 미국핵의학회에 발표하였는데 이는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발표 숫자이다. 이러한 세계 4위는 작년까지 6년간 연속되어 오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히 오래 지속이 될 것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발표를 하기 시작한지 3년째가 되던 2002년에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핵의학회를 2006년도에는 한국에서 열자고 압도적으로 결정이 되었을 정도이다.
미국핵의학회 발표 숫자가 급증한 때가 1994년에 PET이 서울대학교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 설치되고 약 2년 후 PET을 이용한 연구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올 때부터였으니 PET이 얼마나 핵의학 발전에 공헌을 하였는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권역별사이클로트론연구소가 설치가 되면서 PET의 보급이 확대되어 핵의학이 더욱 더 발전할 것은 명백하여 보인다.
우리 핵의학과에서는 방사성의약품 분야는 내가 맡아 왔지만, 영상장비 분야는 이재성 박사가 올해 3월에 조교수로 발령을 받으면서 제대로 된 진형을 갖추었다. 그는 내가 핵의학과에 조교수가 되던 1996년에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에 입학하고 우리 과에서 계속 연구를 하여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외국연수까지 거쳤던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그래서 2005년은 우리 과의 큰 경사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핵의학 발전에 가속을 붙여서 연구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올해 5월 24일에는 우리 핵의학과가 세계 최초로 국제원자력기구 협력센터(IAEA Collaborating Center)로 공식적인 지정을 받을 예정이다. 이는 우리 핵의학이 IAEA의 여러 가지 핵의학관련 사업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선진국의 기술 개발력을 가졌으면서도 개도국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잘 되고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핵의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위기가 닥쳐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양성분야이다. 핵의학분야에서는 핵의학전문의 수련제도를 1996년부터 실시하면서 핵의학전공의를 본격적으로 모집하기 시작하여 정규 핵의학 교육을 받은 전문의들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아직 핵의학 전문의의 수요에 비하여 배출하는 숫자가 많이 모자라는 형편이어서 만약 그때 전문의 수련제도를 확립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우리나라는 핵의학의 위기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1997년의 금융위기 이후 이공계의 인기가 급속히 떨어지면서 방사성의약품을 연구할 대학원생 확보는 더 큰 문제가 되었다. 할 수 없이 외국에서 온 박사 후 연구원을 구하여 연구를 하고는 있지만 이는 당면한 연구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장래의 인재로 키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의과대학의 교수니까 핵의학 전공의를 지도학생으로 받아들여 동물실험 같은 생물학적 분야의 연구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그리고 전공의 자신도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의 체내분포나 의약품 효과 등을 연구한 경험은 나중에 핵의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고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하는 등의 화학적인 연구는 화학과나 약대 출신의 학생이 필요한데 이러한 학생이 부족하다. 약학석사를 하고 좀 쉬다가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방사성의약품을 연구하여 이번에 박사학위를 딴 학생이 몇 년 만에 나온 상태다.
권역별 사이클로트론연구소 등이 여러 군데 생기면서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전공한 화학자나 약학자를 교수나 연구원으로 채용하려는 대학이나 연구소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공급을 못해 주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대학원생에 대한 각종 자금 지원이 풍부해져서 과거에 비하면 훨씬 환경이 좋아졌다. 따라서 화학이나 약학 전공자로서 방사성의약품을 연구할 사람을 열심히 구하는 중이다.
2005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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