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8일 목요일

39. 암 추적 효율 높이기 위한 다단계 표적법


단일클론항체가 처음 나왔을 때 암특이적 단일클론항체를 만들어 거기다가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하여 암 조직만 선택하여 죽임으로써 암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니 '미사일 요법'이니 하는 용어가 생겼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단일클론항체를 축적시키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것을 깨닫고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다단계 표지법이다.

이는 단일클론항체에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하여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클론항체와 방사성동위원소를 따로 2~3단계에 걸쳐서 투여함으로써 암 추적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러한 다단계 표적법은 이론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사용된 것은 '아비딘' '비오틴'을 이용한 방법이다.

아비딘은 계란의 흰자에 있는 단백질인데 동일한 4개의 구성단위가 결합되어 있고 한 구성단위마다 한 분자의 비오틴과 결합할 수 있어서 총 4개의 비오틴 분자가 한 분자의 아비딘에 결합이 가능하다. 비오틴은 비타민의 일종으로서 식품으로 섭취를 해야 하는데 많은 음식에 골고루 들어 있어서 결핍증이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지만 날계란을 과다하게 오랫동안 먹으면 비오틴이 아비딘과 결합하여 흡수가 되지 않아 피부염 등 비오틴 결핍 증상이 올 수가 있다. 서양고추냉이 (horse radish)에는 스트렙타비딘이 들어 있는데 이도 역시 비오틴과 결합하는 아비딘과 유사한 단백질이다.

이러한 아비딘과 비오틴이 항체의 다단계 표적법에 사용된 이유는 이들의 결합력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이다. 보통 항원-항체 결합, 수용체-약품 결합 등에서 결합력을 나타내는 숫자는 해리상수(Kd) 값인데, 그 값이 작을수록 결합력도 크다. 보통 수용체-약물 반응은 10-6~10-9M 정도이고, 우리가 매우 강하다고 생각하는 항원-항체 반응도 10-12M보다는 약하다. 그러나 아비딘-비오틴 결합은 Kd값이 10-15M으로서 가장 강한 항원-항체 결합보다 1000배 이상 강하다. 따라서 항체에 아비딘이나 비오틴을 결합하여 체내에 투여 후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한 비오틴이나 아비딘을 다시 투여하면 항체에 결합되어 있는 아비딘이나 비오틴을 찾아가서 결합을 하게 된다. 게다가 아비딘 하나에 4개의 비오틴이 결합할 수가 있으므로 신호를 증폭하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원리는 실제로 체외 조직검사법에 이용하여 어떤 조직에 특정 항원이 존재하는지를 염색하는데 널리 사용이 되고 있는데, 이를 체내에다 적용할 경우 방사성동위원소의 다단계 추적법이라 할 수 있다.

아비딘-비오틴을 이용한 다단계 추적법은 수많은 조합을 생각할 수가 있지만 최대 3단계 방법 정도까지만 실용적이고, 그보다 더 많은 단계는 수행이 복잡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실용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이러한 다단계 추적법에 가장 널리 사용된 방사성동위원소는 인듐-111이다.

우선 2단계 추적법은 비오틴을 결합한 항체를 투여하여 암 조직에 모인 다음 인듐-111을 표지한 아비딘을 투여하는 2단계추적방법-1과 아비딘을 결합한 항체를 투여하여 암 조직에 모인 다음 인듐-111을 표지한 아비딘을 투여하는 2단계추적방법-2가 있다. 2단계 추적방법-1은 인듐-111을 표지한 아비딘이 간에 너무 빨리 축적이 되므로 스트렙타비딘으로 대체함으로써 개선을 이루었다. 그런데 2단계추적법-2는 항체 자체가 분자량이 매우 큰데 거기다가 아비딘 단백질을 결합하면 분자량이 너무 커지는데다가 항체 한 분자에 아비딘 한 분자를 결합하기도 어려워 실용화에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에 거의 사용되지는 않았다.

3단계 추적법은 비오틴을 결합한 항체를 투여하여 암 조직에 모인 다음 아비딘을 투여하고 나중에 인듐-111을 표지한 비오틴을 투여하는 방법이다. 이는 절차가 복잡한 단점이 있지만, 마지막 단계에 분자량이 작은 인듐-111을 표지한 비오틴을 투여하기 때문에 투여 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영상을 얻을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화학적으로도 항체에 비오틴을 결합하거나 비오틴에 인듐-111을 표지하는 것 등은 비교적 쉽게 할 수가 있어 매우 실용적인 방법이라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연구는 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많이 수행되어 실제 환자에 투여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수행된 적이 없다. 이는 주로 기술적인 문제보다도 약사법적인 문제가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서 연구를 할 때 나의 수퍼바이저였던 백창흠 박사께 다단계 표적시에 인듐-111보다는 테크네슘-99m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므로, 비오틴에 MAG3를 결합하고 테크네슘-99m을 표지하는 연구를 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테크네슘-99m을 표지한 비오틴을 합성한 다음 생쥐에 투여하여 보니 소장으로 빨리 배설이 되었다. 실제로 다단계 표적에 많이 사용하는 인듐-111로 표지된 비오틴은 신장을 통하여 소변으로 빨리 배설이 되므로 영상화에 편리하지만, 소장으로 배설이 될 경우 뱃속에 오래 남아 있어 영상화에는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실망을 하였다. 그래도 간담도 영상용 방사성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간담도 영상용으로 널리 사용되는 DISIDA와 비교 연구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DISIDA에 비하여 간담도 배설이 더 빠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간담도 영상용으로 사용하여도 실용성이 없겠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의 연구는 중단하였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내가 귀국한 뒤에 그 실험실에서 연구를 계속한 김명곤 박사(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그 실험을 더 발전시켜 학술지에 발표를 하였다. 그 논문을 본 순간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사성의약품보다 성능이 더 좋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학술지에는 수많은 논문들이 발표되는데 그것들이 모두 기존의 연구보다 더 좋은 결과는 아니지만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연구 결과를 알게 됨으로써 새로운 학문발전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2005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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