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1일 금요일

3. 방사성의약품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방사성의약품에 대하여 글을 쓰려니 우선 내가 방사성의약품을 시작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약대 출신인 내가 방사성의약품을 연구한다면서 의대 교수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1982년 나는 대학원 약학과 석사과정 학생이었는데 생화학실 지도교수이신 이상섭 교수께서 당시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연구하신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캅사이신'과 생강의 매운 성분인 '진저롤'이 서로 어떻게 화학적인 유사성이 있고, 화학구조가 어떻게 변하면 매운 성질이 사라지는지, 또한 이들을 합성하려면 어떻게 하고, 동물 체내에서 대사는 어떻게 되는지 등에 흥미를 갖고 친구인 서영준(현 서울대 약대 교수)과 밤낮이 가는지도 모르고 연구를 하며 지냈었다. 당시 실험실 상황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이 현재에 비하여 상대가 되지 않게 낮아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현재의 이공계 위기라는 말도 없었고, 무조건 연구만 열심히 하면 나중에는 무엇이든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 해 12월 지도교수께서 부르셔서 '서울대병원 핵의학과에서 방사성의약품을 연구할 사람을 구하는데 가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 보셨다. 방사성의약품은 당시 서울대 약대에서 나운용 교수께서 강의를 하신 적이 있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분야였다. 그 분은 당시 국내의 미약한 연구비나 기자재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한 연구 활동은 별로 없으면서 저술활동만 활발하게 하시는 상황이었고, 다른 대학에서도 약대에서는 방사성의약품에 대한 강좌나 연구가 거의 없어서 국내 대학에서는 거의 불모지였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과장이신 고창순 교수께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니 "잘 왔다"고 하시면서 다짜고짜 논문을 하나 주시며 연구해 보라고 하셨다. 이는 갑상선자극 호르몬에 '도노마이신'이라는 항암제를 결합하여 갑상선암을 치료하는 논문이었다.

논문을 받고 나와서 서일택 기사장의 안내를 받아 핵의학과를 둘러보면서 방사성의약품을 어떻게 표지하고 표지가 제대로 되었는지 어떻게 검사하는지를 보니 매우 흥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의사들도 연구를 조금만 하면 다 할 수 있을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은 임상병리사를 교육시켜 하면 될 텐데 왜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러한 의문은 세월이 흐르면서 풀리게 되었는데, 내가 약대에서 배운 각종 의약품에 대한 화학적 지식, 특히 석사과정 첫 1년동안에 밤낮으로 실험하며 갈고 닦은 지식은 의사들이나 임상병리사들은 쉽게 배우거나 익힐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의약품 개발에 필요한 초보적인 화학구조 디자인과 합성법 같은 것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의 수준급이 되어 있었고, 그 능력이 방사성의약품 분야와 접목을 함으로써 새롭게 발휘될 수가 있다는 것을 서서히 느꼈다.

특히 고창순 교수께서 처음 주신 논문의 실험 내용을 설명해 드리면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과요드산을 이용하여 도노마이신의 아미노당 측쇄에 있는 비시날 하이드록시와 아미노기를 산화시켜 알데히드를 만든 다음 갑상선자극호르몬의 아미노기와 쉽스 염기를 만들어 결합하고 소디움시아노보로하이드라이드로 환원하여 안정화 시킨다"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고 더욱 더 나아가 이러한 화학반응을 스스로 고안해 낼 수 있는 의사는 아주 드물 것이다.

따라서 방사성의약품 분야 중 의사들이 할 수 없는 분야에 나의 지식과 노력을 보탬으로써 더욱 더 발전시키고 국가 경쟁력도 높이게 되는 것이다.

2004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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