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9일 토요일

17. 신장 세뇨관 배설 방사성의약품

테크네슘 방사성의약품 설명 초기에 'Tc-99m-DTPA는 사구체 여과로 배설되는 방사성의약품'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그런데 신장의 세뇨관으로 배설되는 방사성의약품은 배설 속도가 더 빠르고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서 개발의 필요성이 있었다.

원래 세뇨관 배설 방사성의약품은 요드-131로 표지된 '히퓨란'이라는 것이 있는데, 요드-131은 베타선이 방출되고 반감기가 8일로 너무 긴 데다 또한 히퓨란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와 갑상선에 축적이 되므로 갑상선에 손상을 줄 위험이 컸다. 따라서 안전하고 깨끗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테크네슘-99m으로 표지된 방사성의약품의 개발에 많은 과학자들이 경쟁을 하였다.

1980년대 중반 경이었다. 미국에서 새로 개발하였다는 세뇨관으로 배설되는 테크네슘-99m용 방사성의약품이라면서 'PAHIDA'라는 것을 누가 가지고 왔다. 아직 제품화되기 전이어서 병에 든 흰색 가루였다. 이를 의사들이 표지해 달라고 하면서 나에게 주었다. 처방에 따라 환원제와 섞고 테크네슘-99m을 표지하여 주었더니 의사들 중 갑자기 임상무 선생(현 원자력의학원 비상진료센터장)이란 분이 감마카메라 아래에 턱 눕더니 내가 조제해 준 PAHIDA를 주사 맞고 핵의학 영상을 찍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온 영상은 실망스럽게도 신장으로 배설되는 모습이 아니고 해석하기 힘든 이상한 영상이 나왔다. 핵의학 의사들이 아무리 의논을 해도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세뇨관 배설이 되는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을 개발하여 보고 싶은 욕망이 갑자기 생기기 시작하였다.

PAHIDA가 이상한 영상을 보인 것일까. 우선 히퓨란과 PAHIDA의 화학구조를 살펴보면<그림 참조> 둘 다 벤조산에 글리신이 결합한 구조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에서 노폐물을 빨리 배설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폐물에 글리신을 결합하여 세뇨관으로 배설하는 것이 생화학 교과서에 나온다. 따라서 글리신이 붙어있는 히퓨란과 PAHIDA는 모두 세뇨관으로 배설이 될 것이다
신장영상용 방사성의약품.
세뇨관배설에 중요한 글리신 부분은 굵게 표지  


그런데 PAHIDA는 왜 세뇨관 배설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화학구조를 보면 PAHIDA는 테크네슘을 표지하기 위하여 글리신과 반대쪽에 -COOH가 두개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COOH 4개 있는 EDTA는 테크네슘과 결합력이 너무 약해 5개 있는 DTPA를 만들었더니 잘 결합했다는 사실과 결부시켜보면 PAHIDA는 테크네슘과 결합력이 너무 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PAHIDA에 붙어 있는 테크네슘이 체내에서 술술 떨어져 나와서 이상한 영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DTPA에 글리신을 결합한 새로운 화합물 소위 DTPAG를 합성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세계 최초로 세뇨관 배설을 하는 테크네슘 표지 방사성의약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 DTPAG를 합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난관에 부딪혔는데 나의 유기 합성 실력은 아직 프로페셔널 수준이 아니었고, 또한 COOH가 많이 있는 물질들은 서로 성질이 비슷하여 합성한 후에 분리 정제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즉 합성 후 섞여 있는 DTPA DTPAG는 당시 나의 기술로 분리 정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대학교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온갖 문헌을 다 찾아서 읽고 각종 방법으로 합성을 시도하였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그것만 이루어 낸다면 당시 우리나라 수준에서는 커다란 업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그 일에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MAG3라는 세뇨관 배설용 방사성의약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도 DTPAG보다 못할 걸"하고 생각을 하다가 MAG3의 화학구조<그림 참조>를 본 순간 "졌다!"라고 생각이 되었다. 왜냐하면 DTPAG는 테크네슘과 결합시의 화학구조에 대하여 거의 알 수 없지만 MAG3는 아주 안정한 킬레이트가 될 뿐만 아니라 최종 구조도 히퓨란과 성질이 상당히 유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한 DTPAG가 세뇨관으로 배설이 잘 된다고 해도 이미 한발 늦어서 개발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세뇨관 배설 방사성의약품의 개발은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른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을 개발하겠다는 야심을 갖게 되었다.


2004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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