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9일 토요일

16. 폐 영상용 방사성의약품 - MAA

1990년대 초반 전세계 핵의학자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일본 핵의학계를 이끌던 선구자의 한 사람인 동경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 주임교수인 마사히로 이오 교수가 자살한 사건이었다. 그 무렵 핵의학분야에서는 최신 핵의학영상장비인 SPECT가 급속히 보급되던 시기였고, 미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들이 신제품을 만들어 경쟁하고 있었다.

한 한국계 사장이 세운 미국회사도 뛰어난 SPECT를 개발하여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영업담당자가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자기회사 즉, 한국 사람이 개발한 SPECT를 일본에 팔기 위하여 기밀에 속하는 기술 정보까지를 이오 교수에게 알려줬는데 이를 이오 교수가 일본의 도시바 회사에 넘겨주었고 그 때문에 자기 회사의 타격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영업담당자가 한 이야기이므로 틀림없이 과장이 있을 것이지만 나에게는 이오 교수는 애국심이 강한 일본의 거물 핵의학자라는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다음 내가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나 뜻밖이었다. 마침 같은 연구실에 있던 일본인 핵의학자가 이야기 하기를 "무언지 모르지만 모종의 비리 사건으로 경찰의 수사가 좁혀져 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자살한 것 같다"고 했다.

이오 교수를 추도하기 위하여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핵의학과 헨리 와그너 교수가 일본을 방문하여 강의를 하였다. 와그너 교수는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 세계 핵의학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다. 일본에서 있었던 이오 교수를 위한 추도강의를 직접 듣지는 못했으나 나중에 초록집에 실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 와그너 교수가 테크네슘을 표지한 거대응집인혈청알부민(MAA, Macroaggregated Human Serum Albumin)을 이오 교수와 함께 처음 개발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이는 혈청알부민의 수용액을 적당하게 휘저으면서 가열하여 응집을 시켜 입자 크기가 10~50μm가 되게 한 것인데, 이것을 테크네슘으로 표지하여 정맥주사를 하면 대정맥과 심장을 거쳐 폐로 가서 거기 있는 모세혈관에 모두 걸려 폐의 영상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MAA를 이용한 폐 영상을 처음 본 것은 서울대학병원 핵의학과에 연구하러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데, 폐 영상 원리를 알고는 상당히 놀란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모세혈관에 걸릴 정도의 큰 입자를 정맥주사를 한다는 것이 약대를 졸업한 대학원생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위험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폐의 모세혈관을 막아서 폐가 상하지나 않을까, 아니면 심장이나 뇌의 모세혈관을 막으면 더욱 큰 문제가 날 텐데' 그러나 의사들의 설명을 듣고는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지금도 그것으로 전 세계에서는 많은 환자의 폐영상을 하고 있다.

와그너 교수는 처음 개발한 MAA를 개에 투여하여 폐의 영상이 잘 나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이를 사람에 투여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와그너 교수가 자청하여 그 주사를 맞고 폐의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를 주사 맞은 사람이 그 때 존스홉킨스에 연구하러 와 있던 이오 교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와그너 교수는 이오 교수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수준을 달리고 있는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나 과거에 중진국에서 선진국을 따라 잡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던 동경대학교의 엘리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를 하였는가를 실감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에 못지않게 치열하게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는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되는 과학자들의 성공담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그 중에 나와 비슷 시기에 대학원을 다니던 친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참으로 감명이 깊었고, 또한 서울대의 황우석 교수와 문신용 교수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기생충학교실에서는 연구를 위하여 기생충 알을 직접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것은 내가 의과대학에 온 후로 흔히 들은 사실이다. 과학자들의 이러한 연구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는 한 이공계에 대한 지원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면 우리나라도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 과학국가로 변신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이공계란 전자, 기계, 화학뿐만 아니라 의과대학과 병원에서의 기초의학 및 임상연구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때는 황우석 사태가 터지기 전임)


2004년 7월 5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