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9일 토요일

10. PET용 사이클로트론의 도입

1994년에 서울대학교병원에 PET 전용 사이클로트론이 도입이 되었다. 사이클로트론의 가장 중요한 규격은 가속 양성자 빔의 에너지로 표현하는데 그 전에 원자력병원에 도입된 것은 50 MeV였고, 서울대병원에 도입된 것은 13 MeV였다.
에너지가 높을수록 생산할 수 있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종류가 많아지는데, 예를 들면 13 MeV 사이클로트론은 양전자방출핵종인 불소-18, 탄소-11, 산소-15, 질소-13만 주로 만들고, 에너지가 30 MeV를 넘어가면 양전자방출핵종 뿐만 아니라, 요드-123, 탈륨-201, 갈륨-67, 인듐-111 등 여러 가지 다른 핵종도 만들 수가 있다. 따라서 PET만을 위해서는 가격이 비교적 싼 낮은 에너지의 사이클로트론이면 되는 것이다.
PET를 하려면 PET를 찍는 장치인 PET스캐너와 양전자 방출 방사성의약품 생산을 위한 사이클로트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의 'PET센터'를 지을 때 PET스캐너는 계획대로 도입이 되어 설치가 끝났는데 사이클로트론은 캐나다의 제작회사에서 문제가 생겨 계획보다 훨씬 늦어지게 되었다.
나는 사이클로트론 도입 계획이나 계약 등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어서 전혀 관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 차질은 나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이클로트론으로 생산되는 방사성의약품 공급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이러한 사이클로트론의 설치 차질은 나의 책임으로 보이는 것 같아 매우 불안하였다.
계획된 PET센터 준공일은 다가오는데 사이클로트론은 이제 겨우 병원에 도착한 상태였다. 사이클로트론은 매우 복잡한 기계여서 설치에만 4개월 이상이 걸린다. 가만히 계산해보니 PET센터 준공일까지 아무리 해도 사이클로트론을 가동할 수가 없어서 PET센터 준공기념식 때는 우리가 찍은 PET 영상이 아닌 PET스캐너 공급회사에서 제공한 PET영상만 전시하게 될 것이 뻔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이클로트론이 설치되어 있던 원자력병원에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꼭 필요한 불소-18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고맙게도 원자력병원에서는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문제는 원자력병원에서는 그 때까지 불소-18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불소-18을 만들기 위해서는 액체를 넣어서 사이클로트론에서 나오는 양성자 빔을 조사할 수 있는 액체 타깃이 필요한데 원자력병원에서는 그 때까지만 해도 액체 타깃을 만들어 본 적도, 설계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서울대병원의 사이클로트론 제작사가 있는 캐나다의 밴쿠버에 가서 원자력병원의 사이클로트론에 장착할 수 있는 액체 타깃을 급히 만들어 가지고 왔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캐나다의 사이클로트론 제작회사의 책임이 컷기 때문에 자기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모든 경비를 부담해 주었다. 원자력병원의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은 처음 보는 액체 타깃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불소-18을 만드는 실험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이는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원자력병원의 사이클로트론에서 나오는 양성자 빔의 에너지가 너무 커서 그 것을 줄이는 문제와 이 빔을 정확하게 타깃에 명중시키는 문제, 타깃에 맞는 빔의 양 측정 등은 우선 해결했지만, 빔을 쬐는 동안에 타깃 내부의 압력이 너무 올라가고, 불소-18이 생각보다 적게 만들어지며, 만들어진 불소-18이 제대로 회수가 안 되는 등 수많은 문제에 봉착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병원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은 여러 날 밤샘을 해가며 실험을 진행시켰는데, PET센터 준공을 겨우 사흘 앞두고 성공을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사이클로트론 회사에서 타깃을 제작할 때 기계로 가공하면서 윤활유를 칠하는데 이 윤활유를 세척제로 완전히 제거를 하지 않고 불소-18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윤활유가 양성자 빔을 맞으면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온갖 불순물이 타깃 속에 생성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만든 불소-18을 서울대병원에 가지고 와서 방사성의약품을 합성하고 이를 이용하여 국내 최초의 PET를 뇌종양 제거 수술을 한 환자에 시행하였다. 그 결과 이 환자는 불행하게도 뇌종양이 재발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고, 이는 동시에 촬영한 MRI로서는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이어서 PET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되었다.
또 다른 몇 건의 PET 촬영을 하여 우리가 직접 찍은 PET 영상을 전시하여 PET센터 준공식은 구색을 갖춰 마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많은 노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던 원자력병원의 사이클로트론 연구원과 기술자들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2004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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