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영상용 방사성의약품으로 또 하나 유명한 것에 HMPAO가 있다. HMPAO는 d,l형과 meso형 두 가지의 이성체가 있다 (화학자를 위한 설명: d,l형은 정확히 말하면 R,R형과 S,S형의 혼합물이고, meso형은 R,S형이다. R,S와 S,R형은 똑같은 물질이다).
이러한 이성체들은 모두 테크네슘과 지용성 킬레이트를 형성할 수 있는데, 이 중 d,l형은 약간 불안정한 킬레이트를, meso형은 안정한 킬레이트를 형성한다. 두뇌 영상용으로는 불안정한 킬레이트를 만드는 d,l형이 사용된다. HMPAO는 ECD처럼 지용성이 매우 강하여 두뇌 속으로 쉽게 들어가고, 불안정한 d,l형은 두뇌 속에 있는 글루타치온과 반응하여 수용성 물질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다시 두뇌를 빠져나오지 못하여 두뇌 축적이 되는 것이다.
HMPAO의 합성은 논문만 읽어 보면 ECD보다 어렵지 않게 보인다. 액체 암모니아도 필요 없고 전체적으로 평이하다. 그러나 실제로 실험을 하여 보면 그것이 아니다. 우선 첫 번째 반응부터 문헌대로 되지를 않는다. 나중에 미국 NIH에서 우리병원에 초청 과학자로 1주일간 머물다 가신 백창흠 박사님께 들어서 알았는데, 첫 단계 반응에 문헌에는 초산을 첨가하고 반응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초산이 들어가면 절대로 반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산을 빼고 했더니 아주 반응이 잘 되었다. 그래서 이 논문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d,l-HMPAO와 meso-HMPAO의 화학구조 |
HMPAO 합성의 마지막 단계는 이성체를 분리해 내는 단계다. 에틸아세테이트에 반응혼합물을 녹이고 계속 방치하여 두면 에틸아세테이트가 증발하면서 결정이 석출되는데 meso형이 먼저 석출이 되고 d,l형이 나중에 석출이 된다. 사실 이 과정은 마냥 기다리는 단계이면서도 합성하는 자체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이 과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를 할 수도 있다. 다행히 나는 d,l형의 결정을 제대로 잘 회수를 하여 합성에 성공하였다. 이렇게 얻은 HMPAO는 그 후로 수년간 동물실험 및 백혈구 표지 등에 사용을 하였다.
HMPAO의 합성에 성공하고 나는 미국에 가서 3년간 연구원으로 지내다가 귀국하였는데 KIST에서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관심이 많다고 하여 우리와 공동연구를 시작하였다. KIST에서는 우리와 의논하여 HMPAO와 화학구조가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화합물을 열심히 합성하여 주었는데 운이 나쁘게도 테크네슘으로 표지하여 동물실험을 해 본 결과 HMPAO 만큼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세계적인 회사가 HMPAO를 개발할 때 수많은 화합물을 합성해 보고 HMPAO를 골랐을 텐데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KIST 연구팀은 원자력연구소와 또 합작을 하여 상품화를 시도하여 수 년 후에는 성공을 하였다. 그런데 HMPAO는 불안정하여 아주 정밀한 기술로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표지 효율이 많이 떨어질 수가 있고, 또한 meso형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표지는 되더라도 영상품질이 형편없어진다. 어쨌든 우리 병원에서는 그 때까지 외국 제품을 사용하다가 국산으로 나온 제품을 구입하여 사용하였는데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드러났다. 환자의 두뇌 영상이 전혀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이를 사용한 의사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제조 회사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따라서 국산 HMPAO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한편 KIST 연구팀에서 국산화가 늦어지자 국내의 한 제약회사가 방사성의약품의 국산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국내에도 좋은 기술과 시설을 가진 제약회사가 방사성의약품 제조에 참여를 하여야 우리나라 방사성의약품 산업과 핵의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HMPAO의 영상 원리, 합성법, 주의사항 등 내가 아는 것을 모두 전수하여 주었다. 그랬더니 그 회사에서는 이성체가 서로 섞이지 않는 HMPAO를 만드는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하고 그 방법대로 제품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면 이론적으로 원래의 방법으로 만드는 것보다 두뇌 영상이 더 잘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원래 방법대로 합성하면 d,l형과 meso형이 같이 합성이 되고 여기서 d,l형만 분리해 내야 하는데, 이 때 meso형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테크네슘이 meso형에 더 잘 가서 붙으므로 두뇌 영상 품질이 매우 나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개발한 방법대로 합성하면 meso형이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순수한 d,l형만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HMPAO를 사용하여 보니 두뇌 영상이 매우 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 제품은 국내 몇몇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회사는 HMPAO 영상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8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