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9일 토요일

20. 두뇌영상용 방사성의약품 HMPAO

두뇌영상용 방사성의약품으로 또 하나 유명한 것에 HMPAO가 있다. HMPAO d,l형과 meso형 두 가지의 이성체가 있다 (화학자를 위한 설명: d,l형은 정확히 말하면 R,R형과 S,S형의 혼합물이고, meso형은 R,S형이다. R,S S,R형은 똑같은 물질이다).

이러한 이성체들은 모두 테크네슘과 지용성 킬레이트를 형성할 수 있는데, 이 중 d,l형은 약간 불안정한 킬레이트를, meso형은 안정한 킬레이트를 형성한다. 두뇌 영상용으로는 불안정한 킬레이트를 만드는 d,l형이 사용된다. HMPAO ECD처럼 지용성이 매우 강하여 두뇌 속으로 쉽게 들어가고, 불안정한 d,l형은 두뇌 속에 있는 글루타치온과 반응하여 수용성 물질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다시 두뇌를 빠져나오지 못하여 두뇌 축적이 되는 것이다.

HMPAO의 합성은 논문만 읽어 보면 ECD보다 어렵지 않게 보인다. 액체 암모니아도 필요 없고 전체적으로 평이하다. 그러나 실제로 실험을 하여 보면 그것이 아니다. 우선 첫 번째 반응부터 문헌대로 되지를 않는다. 나중에 미국 NIH에서 우리병원에 초청 과학자로 1주일간 머물다 가신 백창흠 박사님께 들어서 알았는데, 첫 단계 반응에 문헌에는 초산을 첨가하고 반응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초산이 들어가면 절대로 반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산을 빼고 했더니 아주 반응이 잘 되었다. 그래서 이 논문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d,l-HMPAO와 meso-HMPAO의 화학구조

HMPAO 합성의 마지막 단계는 이성체를 분리해 내는 단계다. 에틸아세테이트에 반응혼합물을 녹이고 계속 방치하여 두면 에틸아세테이트가 증발하면서 결정이 석출되는데 meso형이 먼저 석출이 되고 d,l형이 나중에 석출이 된다. 사실 이 과정은 마냥 기다리는 단계이면서도 합성하는 자체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이 과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를 할 수도 있다. 다행히 나는 d,l형의 결정을 제대로 잘 회수를 하여 합성에 성공하였다. 이렇게 얻은 HMPAO는 그 후로 수년간 동물실험 및 백혈구 표지 등에 사용을 하였다.

HMPAO의 합성에 성공하고 나는 미국에 가서 3년간 연구원으로 지내다가 귀국하였는데 KIST에서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관심이 많다고 하여 우리와 공동연구를 시작하였다. KIST에서는 우리와 의논하여 HMPAO와 화학구조가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화합물을 열심히 합성하여 주었는데 운이 나쁘게도 테크네슘으로 표지하여 동물실험을 해 본 결과 HMPAO 만큼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세계적인 회사가 HMPAO를 개발할 때 수많은 화합물을 합성해 보고 HMPAO를 골랐을 텐데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KIST 연구팀은 원자력연구소와 또 합작을 하여 상품화를 시도하여 수 년 후에는 성공을 하였다. 그런데 HMPAO는 불안정하여 아주 정밀한 기술로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표지 효율이 많이 떨어질 수가 있고, 또한 meso형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표지는 되더라도 영상품질이 형편없어진다. 어쨌든 우리 병원에서는 그 때까지 외국 제품을 사용하다가 국산으로 나온 제품을 구입하여 사용하였는데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드러났다. 환자의 두뇌 영상이 전혀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이를 사용한 의사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제조 회사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따라서 국산 HMPAO는 다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한편 KIST 연구팀에서 국산화가 늦어지자 국내의 한 제약회사가 방사성의약품의 국산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국내에도 좋은 기술과 시설을 가진 제약회사가 방사성의약품 제조에 참여를 하여야 우리나라 방사성의약품 산업과 핵의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HMPAO의 영상 원리, 합성법, 주의사항 등 내가 아는 것을 모두 전수하여 주었다. 그랬더니 그 회사에서는 이성체가 서로 섞이지 않는 HMPAO를 만드는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하고 그 방법대로 제품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면 이론적으로 원래의 방법으로 만드는 것보다 두뇌 영상이 더 잘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원래 방법대로 합성하면 d,l형과 meso형이 같이 합성이 되고 여기서 d,l형만 분리해 내야 하는데, 이 때 meso형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테크네슘이 meso형에 더 잘 가서 붙으므로 두뇌 영상 품질이 매우 나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개발한 방법대로 합성하면 meso형이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순수한 d,l형만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HMPAO를 사용하여 보니 두뇌 영상이 매우 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 제품은 국내 몇몇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회사는 HMPAO 영상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8월 16일

19. 두뇌 영상용 방사성의약품 ECD

신장 영상용 방사성의약품인 'MAG3'의 합성에 성공한 후 두뇌 영상용 방사성의약품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두뇌영상용 방사성의약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ECD' 'HMPAO'인데 먼저 ECD에 대하여 알아본다.

ECD는 질소가 두개, 유황이 두개 있어서 N₂S₂ 계통의 화합물인데, 테크네슘과 매우 안정하면서 지용성이 강한 킬레이트를 생성한다. 지용성이 강한 물질은 두뇌에 잘 흡수가 된다. 따라서 정맥주사를 하면 두뇌 속에 재빨리 흡수가 된다. 그런데 ECD에는 에스테르 결합이 두개가 있는데 이는 두뇌 속에 있는 에스터레이즈에 의하여 재빨리 가수분해가 되고 수용성 물질로 된다. 수용성 물질은 뇌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므로 두뇌 속에 축적이 되는 것이다. '두뇌 속에 계속 축적이 되면 독성이 없느냐'고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이렇게 두뇌에 흡수되는 양은 아주 극미량이어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ECD가 두뇌에 흡수가 되는 기전을 보니 참으로 재미있어서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약을 사서 실험을 시작했는데 액체 암모니아에 금속 나트륨을 넣어 환원반응을 시키는 단계가 있었다.

시약용 액체 암모니아를 사려고 보니 당시 우리 연구비로 사기에는 상당히 비싸서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암모니아를 구하려고 여기 저기 수소문해 본 결과 냉동기의 냉매로 사용하는 액체 암모니아는 가격이 매우 싼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것을 주문했더니 나보다 덩치가 더 큰 금속통 안에 든 암모니아가 운반되어 왔다. 암모니아 통이 너무 커서 후드 안에는 넣을 수가 없어서 호스를 연결하고 호스 끝을 후드 안에 넣은 후 꼭지를 여니 암모니아 가스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는데 내가 필요한 것은 액체 암모니아였기 때문에 액체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런 경우 원칙적으로 암모니아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끓는 액체 질소 안에 플라스크를 담그고 여기에 암모니아 가스를 살살 불어 주면서 액화를 시켜야 한다.

필자가 합성한 두뇌영상용 방사성의약품 ECD를
주사 맞고 정상임을 확인한 두뇌영상 사진
그러나 나는 그 방법을 몰랐고 당시 우리나라는 액체 질소도 귀하였고 하여 다른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것은 액체 암모니아 통을 눕힌 다음 꼭지를 열면 꼭지가 액체 암모니아보다 아래에 있어 액체가 뿜어져 나올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면 액체 암모니아를 후드 밖에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액체 암모니아를 받았더니 암모니아 냄새가 엄청나게 나서 우리 실험실뿐만 아니라 우리 과() 전체가 냄새로 꽉 찼다. 그 때 암모니아 냄새에 단련이 되어서 지금도 아무리 독한 냄새가 나는 홍어회도 맛있게 잘 먹는다
어쨌든 우여 곡절 끝에 결국 ECD를 합성하였다. 그 무렵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 연구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내 뒤를 이은 연구원이 이를 테크네슘으로 표지하여 흰쥐에 투여했더니 두뇌에 축적이 잘 안된다고 미국으로 연락이 왔다. 나는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문헌 조사를 잘 해보니 ECD는 흰쥐에 투여할 경우 혈액에서 빨리 가수분해가 되고 두뇌 속에서는 거의 가수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두뇌 영상이 나타나지를 않고, 영장류, 즉 사람이나 원숭이에서만 두뇌 영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ECD를 처음 개발한 논문도 자세히 보니 쥐 실험은 하지 않고 원숭이 실험만 한 것이었다.

의약품을 개발할 때 동물실험까지는 잘 되다가 사람에서는 잘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그때까지 투자한 비용을 몽땅 날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ECD의 경우는 동물실험에서는 잘 안되다가 사람에서는 잘 되는 반대의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원칙대로 한다면 제품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동물에 안 되는 것을 어떻게 사람에 쓸 수가 있는가. 그러나 ECD의 경우는 제품으로 되었다. 이는 외부 공개는 하지 않지만 동물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사람에 먼저 투여했을 것으로 짐작을 할 수가 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워싱턴 DC 근처에서 한국의 제약회사와 재미 한국인 과학자의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미국 제약업체에 근무하는 사람이 그러한 이야기를 하였다. 즉 동물실험을 먼저하고 사람실험을 해서 결과가 나쁘면 너무나 많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사람에 먼저 사용하여 보고 결과가 좋으면 동물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FDA에 근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냥그러냐"고만 할 뿐이어서 상당히 놀랐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미국에서는 신약의 경우 동물실험을 먼저하고 FDA의 허가를 받아야지만 사람에 투여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귀국하여 내가 합성한 ECD를 테크네슘으로 표지하여 내가 직접 주사를 맞고 SPECT를 찍었더니 내 두뇌가 정상으로 나오는 것을 알았다. ECD는 동물실험은 원숭이에 해야 하는데 실험용 원숭이는 국내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2004년 7월 31일

18. 국내 최초의 Tc-99m MAG3 영상

MAG3에 패배를 한 뒤 내 실력이 킬레이트화학 분야에서 아직 국제 수준에 많이 미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패배는 당연한 일이다. 아직 석사밖에 안 된 학생이 세계적인 학자들과 겨루겠다는 것부터가 무모한 일이었다. 또한 문헌 조사만 잘 했더라도 MAG3에 대한 정보를 더 빨리 알 수가 있었고 따라서 헛수고를 줄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무기화학 교과서도 사고 테크네슘에 관한 각종 문헌을 찾아서 더욱 더 열심히 공부를 하여 실력을 쌓아 나갔다.

그리고 MAG3를 직접 합성하여 보기로 하였다. MAG3의 화학구조는 볼수록 배울 것이 많았다. 특히 벤조산을 활성이 강하고 불안정한 티올기에 붙여서 보호해 두었다가 테크네슘-99m을 표지할 때 끓여서 떨어지게 한 점과 타타르산 염을 첨가하여 테크네슘-99m으로 표지시에 콜로이드와 같은 부산물이 생성되지 않도록 한 점 등은 처음 보는 기법이었다.

당시에는 연구비가 적어서 실험을 망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쓰고 실험을 할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여야 했다. 합성을 한 단계 한 단계 해 나가면서 성공을 할 때마다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이러한 실험은 유기합성 전문가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새롭고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당시 실험실은 화학실험시 나오는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퓸후드의 팬 기능이 약하고 외부에서 역풍이 불면 실험실로 도로 들어오는 수가 있어서 실험실 내에는 내가 하는 실험 때문에 악취가 풍기곤 하였다.

MAG3 직접 합성하여 주사 맞고 찍은 사진
내가 합성한 MAG3에 테크네슘-99m을 표지하였더니 아주 잘 되는 것을 알았다. 당시 동물에서 체내 약물동태 연구에 전문가이던 박경호 박사(현 서울대학병원 약무과장)의 도움을 받아 쥐에 투여하는 실험을 하여 보니 역시 세뇨관으로 배설이 아주 잘 되었다. 나에게는 유기합성보다는 동물실험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섬세한 기술과 인내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존스홉킨스 의대의 헨리 와그너 교수가 폐 영상용 방사성의약품인 Tc-99m-MAA를 자기 자신에게 최초로 투여하고 핵의학 영상을 얻었던 것처럼, 내가 만든 MAG3를 테크네슘-99m으로 표지하고 나에게 투여하고 영상을 만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신장으로 매우 빨리 배설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세뇨관 배설을 억제하는 프로베네시드를 먹고 Tc-99m-MAG3를 투여하니 배설이 느려지는 것도 관찰할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당시까지 MAG3를 수입하지 않는 상황이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MAG3 영상이었던 셈이다.

MAG3는 미국에서 이미 개발한 방사성의약품이므로 이를 그대로 합성하여 영상을 만들어 본다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선진 기술을 그대로 따라해 봄으로써 앞으로 새로운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데는 큰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나를 패배로 이끈 화합물을 꼭 만들어서 실험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약동력학적인 연구는 저널에 발표된 것과는 다르게 하여 새로운 발견도 있었으므로 '대한핵의학회지'에 발표를 하였고, 당시에는 우리나라 핵의학 분야에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우리 세대부터는 어릴 때 장래 희망이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과학자의 수요가 급증하고 과학자에 대한 대우도 좋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장래 희망이 과학자였다. 나는 어떤 원리 규명보다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발명 쪽에 더 관심이 많았던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중학교 고등학교의 입시지옥을 지나며 거의 사라져 갔지만 대학교와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차츰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서울대학병원 핵의학과에 와서 새로운 신장 영상용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몰두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이 원래 어릴 때부터의 희망에 따른 궤도로 들어서게 되었고 더욱 더 핵의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2004년 7월 19일

17. 신장 세뇨관 배설 방사성의약품

테크네슘 방사성의약품 설명 초기에 'Tc-99m-DTPA는 사구체 여과로 배설되는 방사성의약품'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그런데 신장의 세뇨관으로 배설되는 방사성의약품은 배설 속도가 더 빠르고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서 개발의 필요성이 있었다.

원래 세뇨관 배설 방사성의약품은 요드-131로 표지된 '히퓨란'이라는 것이 있는데, 요드-131은 베타선이 방출되고 반감기가 8일로 너무 긴 데다 또한 히퓨란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와 갑상선에 축적이 되므로 갑상선에 손상을 줄 위험이 컸다. 따라서 안전하고 깨끗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테크네슘-99m으로 표지된 방사성의약품의 개발에 많은 과학자들이 경쟁을 하였다.

1980년대 중반 경이었다. 미국에서 새로 개발하였다는 세뇨관으로 배설되는 테크네슘-99m용 방사성의약품이라면서 'PAHIDA'라는 것을 누가 가지고 왔다. 아직 제품화되기 전이어서 병에 든 흰색 가루였다. 이를 의사들이 표지해 달라고 하면서 나에게 주었다. 처방에 따라 환원제와 섞고 테크네슘-99m을 표지하여 주었더니 의사들 중 갑자기 임상무 선생(현 원자력의학원 비상진료센터장)이란 분이 감마카메라 아래에 턱 눕더니 내가 조제해 준 PAHIDA를 주사 맞고 핵의학 영상을 찍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온 영상은 실망스럽게도 신장으로 배설되는 모습이 아니고 해석하기 힘든 이상한 영상이 나왔다. 핵의학 의사들이 아무리 의논을 해도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세뇨관 배설이 되는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을 개발하여 보고 싶은 욕망이 갑자기 생기기 시작하였다.

PAHIDA가 이상한 영상을 보인 것일까. 우선 히퓨란과 PAHIDA의 화학구조를 살펴보면<그림 참조> 둘 다 벤조산에 글리신이 결합한 구조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에서 노폐물을 빨리 배설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폐물에 글리신을 결합하여 세뇨관으로 배설하는 것이 생화학 교과서에 나온다. 따라서 글리신이 붙어있는 히퓨란과 PAHIDA는 모두 세뇨관으로 배설이 될 것이다
신장영상용 방사성의약품.
세뇨관배설에 중요한 글리신 부분은 굵게 표지  


그런데 PAHIDA는 왜 세뇨관 배설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화학구조를 보면 PAHIDA는 테크네슘을 표지하기 위하여 글리신과 반대쪽에 -COOH가 두개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COOH 4개 있는 EDTA는 테크네슘과 결합력이 너무 약해 5개 있는 DTPA를 만들었더니 잘 결합했다는 사실과 결부시켜보면 PAHIDA는 테크네슘과 결합력이 너무 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PAHIDA에 붙어 있는 테크네슘이 체내에서 술술 떨어져 나와서 이상한 영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DTPA에 글리신을 결합한 새로운 화합물 소위 DTPAG를 합성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세계 최초로 세뇨관 배설을 하는 테크네슘 표지 방사성의약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 DTPAG를 합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난관에 부딪혔는데 나의 유기 합성 실력은 아직 프로페셔널 수준이 아니었고, 또한 COOH가 많이 있는 물질들은 서로 성질이 비슷하여 합성한 후에 분리 정제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즉 합성 후 섞여 있는 DTPA DTPAG는 당시 나의 기술로 분리 정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대학교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온갖 문헌을 다 찾아서 읽고 각종 방법으로 합성을 시도하였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그것만 이루어 낸다면 당시 우리나라 수준에서는 커다란 업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그 일에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MAG3라는 세뇨관 배설용 방사성의약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도 DTPAG보다 못할 걸"하고 생각을 하다가 MAG3의 화학구조<그림 참조>를 본 순간 "졌다!"라고 생각이 되었다. 왜냐하면 DTPAG는 테크네슘과 결합시의 화학구조에 대하여 거의 알 수 없지만 MAG3는 아주 안정한 킬레이트가 될 뿐만 아니라 최종 구조도 히퓨란과 성질이 상당히 유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한 DTPAG가 세뇨관으로 배설이 잘 된다고 해도 이미 한발 늦어서 개발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세뇨관 배설 방사성의약품의 개발은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른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을 개발하겠다는 야심을 갖게 되었다.


2004년 7월 12일

16. 폐 영상용 방사성의약품 - MAA

1990년대 초반 전세계 핵의학자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일본 핵의학계를 이끌던 선구자의 한 사람인 동경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 주임교수인 마사히로 이오 교수가 자살한 사건이었다. 그 무렵 핵의학분야에서는 최신 핵의학영상장비인 SPECT가 급속히 보급되던 시기였고, 미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들이 신제품을 만들어 경쟁하고 있었다.

한 한국계 사장이 세운 미국회사도 뛰어난 SPECT를 개발하여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영업담당자가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자기회사 즉, 한국 사람이 개발한 SPECT를 일본에 팔기 위하여 기밀에 속하는 기술 정보까지를 이오 교수에게 알려줬는데 이를 이오 교수가 일본의 도시바 회사에 넘겨주었고 그 때문에 자기 회사의 타격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영업담당자가 한 이야기이므로 틀림없이 과장이 있을 것이지만 나에게는 이오 교수는 애국심이 강한 일본의 거물 핵의학자라는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다음 내가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너무나 뜻밖이었다. 마침 같은 연구실에 있던 일본인 핵의학자가 이야기 하기를 "무언지 모르지만 모종의 비리 사건으로 경찰의 수사가 좁혀져 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자살한 것 같다"고 했다.

이오 교수를 추도하기 위하여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핵의학과 헨리 와그너 교수가 일본을 방문하여 강의를 하였다. 와그너 교수는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 세계 핵의학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분이다. 일본에서 있었던 이오 교수를 위한 추도강의를 직접 듣지는 못했으나 나중에 초록집에 실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 와그너 교수가 테크네슘을 표지한 거대응집인혈청알부민(MAA, Macroaggregated Human Serum Albumin)을 이오 교수와 함께 처음 개발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이는 혈청알부민의 수용액을 적당하게 휘저으면서 가열하여 응집을 시켜 입자 크기가 10~50μm가 되게 한 것인데, 이것을 테크네슘으로 표지하여 정맥주사를 하면 대정맥과 심장을 거쳐 폐로 가서 거기 있는 모세혈관에 모두 걸려 폐의 영상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MAA를 이용한 폐 영상을 처음 본 것은 서울대학병원 핵의학과에 연구하러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데, 폐 영상 원리를 알고는 상당히 놀란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모세혈관에 걸릴 정도의 큰 입자를 정맥주사를 한다는 것이 약대를 졸업한 대학원생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위험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폐의 모세혈관을 막아서 폐가 상하지나 않을까, 아니면 심장이나 뇌의 모세혈관을 막으면 더욱 큰 문제가 날 텐데' 그러나 의사들의 설명을 듣고는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지금도 그것으로 전 세계에서는 많은 환자의 폐영상을 하고 있다.

와그너 교수는 처음 개발한 MAA를 개에 투여하여 폐의 영상이 잘 나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이를 사람에 투여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와그너 교수가 자청하여 그 주사를 맞고 폐의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를 주사 맞은 사람이 그 때 존스홉킨스에 연구하러 와 있던 이오 교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와그너 교수는 이오 교수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수준을 달리고 있는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나 과거에 중진국에서 선진국을 따라 잡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던 동경대학교의 엘리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를 하였는가를 실감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에 못지않게 치열하게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는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되는 과학자들의 성공담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그 중에 나와 비슷 시기에 대학원을 다니던 친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참으로 감명이 깊었고, 또한 서울대의 황우석 교수와 문신용 교수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기생충학교실에서는 연구를 위하여 기생충 알을 직접 먹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것은 내가 의과대학에 온 후로 흔히 들은 사실이다. 과학자들의 이러한 연구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는 한 이공계에 대한 지원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면 우리나라도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 과학국가로 변신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이공계란 전자, 기계, 화학뿐만 아니라 의과대학과 병원에서의 기초의학 및 임상연구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때는 황우석 사태가 터지기 전임)


2004년 7월 5일

15. 테크네슘-99m 표지 방사성의약품 개발 원리

제너레이터에서 뽑은 테크네슘-99m은 산소가 4개가 붙어 있는 과테크네슘산으로서 직경이 큰 음이온이기 때문에 요드처럼 갑상선에 섭취가 된다는 설명을 지난 주에 하였다. 그러면 다른 각종 장기의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테크네슘-99m 주위에 붙어 있는 산소를 떼어내고 다른 물질을 붙여 주어 그 물질의 성질에 따라 체내에서 특정장기를 찾아가게 할 수 있다. 즉 테크네슘-99m을 둘러싸고 있는 물질이 두뇌에 잘 가면 뇌 영상용, 폐에 잘 가면 폐영상용, 심장에 잘 가면 심장영상용, 신장에 잘 가면 신장 영상용 등으로 사용이 가능한 것이다.

우선 테크네슘-99m에 붙어 있는 산소를 떼어내야 여기에 다른 물질을 붙일 수가 있다. 산소를 떼어내는 물질은 환원제라고 한다. 제너레이터에서 나온 과테크네슘산의 테크네슘은 +7가의 전기를 띠고 있는데 이를 산화수가 +7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산소는 하나가 -2가의 산화수를 가지고 있어서 과테크네슘산에 있는 4개의 산소는 총 -8의 전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7의 테크네슘과 합치면 전체 전기는 -1이 된다.

환원제는 전자를 주는 물질이므로 +7가인 테크네슘을 +6, +5, +4, +3, +2, +1, 0, -1 등으로 산화수를 낮춰 줄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개발된 방사성의약품을 보면 +5, +4, +3, +1가의 산화수를 가진 것들이 많고 나머지는 거의 없다. 어쨌든 환원제를 사용하면 여러 가지 형태의 환원된 테크네슘-99m의 혼합물이 생성된다.

테크네슘-99m을 환원하는데 사용하는 환원제는 여러 가지 종류가 연구가 되었는데 현재 가장 널리 사용하는 것은 이염화주석(SnCℓ₂)이다. 이염화주석이 테크네슘-99m을 환원시키고 자기는 산화가 되어 사염화주석(SnCℓ₄)으로 되는 것이다.

테크네슘-99m은 환원이 되면 다른 물질과 결합을 하기가 쉬워지는데, 테크네슘-99m은 금속이므로 금속과 잘 결합하는 물질이어야 테크네슘-99m과 안정하게 결합을 한다. 안정하게 결합한다는 것은 '단단하게 결합하여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로서, 안전하다는 말과 다르다. 안전하다는 것은 인체에 독성이나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금속과 안정하게 결합하는 물질 중 대표적인 예는 킬레이트제다. 그리고 킬레이트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EDTA (Ethylene Diamine Tetra Acetic acid)이다. 따라서 EDTA를 넣어 주면 잘 결합을 할 것이다. 그리고 EDTA는 금속과 결합하면 수용성이 강하고 전기를 많이 띠고 있어 신장의 사구체 여과가 쉽게 되어 배설이 빠른 특징이 있으므로 신장영상용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가 있다.
EDTA와 DTPA

그러나 애석하게도 EDTA와 테크네슘이 붙은 킬레이트는 안정성이 좋지를 못하다. 일반적으로 EDTA는 매우 강력한 킬레이트제로 알고 있지만 테크네슘에 대하여는 그렇게 강력하지 못하다. 이는 약간 더 복잡한 화학적 원리로 설명을 해야 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 한 마디만 덧붙이면 테크네슘-99m의 농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EDTA가 테크네슘-99m을 모두 찾아서 결합하려면 그 만큼 힘이 들고, 따라서 생각보다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EDTA에다가 테크네슘-99m과 결합할 수 있는 손을 더 붙인 화합물을 만들었는데 이는 DTPA (Diethylene Triamine Pentaacetic Acid)라고 한다.

EDTA DTPA의 화학구조를 보면<그림 참조> DTPA -COOH가 더 많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COOH 같은 것이 실제로 테크네슘-99m과 결합하는 손으로 작용을 하므로 손이 더 많은 DTPA EDTA보다 더 강력하게 테크네슘-99m과 결합을 한다는 추측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DTPA는 전체적인 화학구조가 EDTA와 유사하여 EDTA처럼 신장에서 사구체 배설에 의하여 빨리 배설이 될 것이고 따라서 신장 영상용으로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가 있다.

실제로 Tc-99m-DTPA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신장기능 영상제이다. 실제 테크네슘-99m 표지 방사성의약품 개발 초기 단계에는 실험실에 돌아다니는 여러가지 킬레이트화제를 닥치는 대로 표지하여 어떤 성질을 나타내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다.

2004년 6월 28일

14. 테크네슘-99m

핵의학을 현재와 같이 발전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방사성동위원소를 한 가지 들라고 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테크네슘-99m'이다. 테크네슘-99m은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 핵의학에서 사용하는 방사성동위원소 사용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지금부터는 테크네슘-99m과 관련된 방사성의약품을 연속으로 다룰 예정이다.

테크네슘-99m은 앞에서도 나왔지만 제너레이터에서 생산을 하므로 다른 방사성동위원소에 비하여 저렴하고 편리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제너레이터 안에서 몰리브덴-99는 베타선과 감마선을 동시에 방출하면서 테크네슘-99m으로 된다. 여기서 m은 준안정상태인 'metastable'의 약자로서 테크네슘-99로 되기 바로 직전의 상태이다. 즉 몰리브덴-99가 베타선을 방출하면서 원래는 테크네슘-99로 되어야 하는데, 그 직전에 준안정 상태인 테크네슘-99m을 거쳐서 가는 것이다. 테크네슘-99m에서 테크네슘-99로 될 때는 감마선만 방출을 한다. 감마선은 투과력은 강하나 조직을 파괴하는 힘은 약하기 때문에 치료용으로는 사용하지 못하고 진단용으로는 매우 이상적이다.

테크네슘-99m이 방출하는 감마선은 에너지가 140 keV인데 이는 감마카메라로 영상을 만들기에 아주 좋은 에너지이다. 에너지가 너무 높으면 감마카메라 자체를 뚫고 지나가기 때문에 탐지의 효율이 떨어지고 에너지가 너무 낮으면 인체를 잘 못 뚫고 나오기 때문에 효율이 떨어진다.

테크네슘의 반감기는 6시간인데 이는 하루가 지나면 반감기가 4번이 지나므로 1/16로 방사능이 줄어들게 되어 피폭이 적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반감기가 더 짧으면 더 빨리 없어지므로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검사는 인체 투여 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검사하여야 하는 수도 있으므로 검사의 종류에 따라 적당한 반감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6시간의 반감기는 대부분의 검사에 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제너레이터에서 뽑아낸 테크네슘-99m은 과테크네슘산 (TcO4-) 형태의 이온으로 생리식염수에 녹아 있는 상태이다. 이는 음이온으로서 체내에 투여하면 요드 음이온처럼 갑상선에 섭취가 된다. 따라서 갑상선의 영상을 얻는데 사용이 가능하다. 원래 갑상선의 영상을 얻는데 가장 적당한 방사성동위원소는 요드-123이지만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가 어려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사용이 되지 않았다. 요드-123에 비하여 테크네슘-99m은 가격이 훨씬 싸고 구하기 쉬운 장점이 있지만 유기화가 되지 않는다. 유기화란 무기물인 요드가 갑상선에서 섭취되어 유기물인 타이로글로불린에 결합된 다음 갑상선 호르몬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는 이러한 생체내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반응이 별로 신기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이러한 현상을 처음 발견하였을 때는 매우 신기해하였던 것 같다.

이렇게 방사성의약품으로 널리 사용되는 테크네슘도 과거에는 매우 희귀한 물질이었다. 테크네슘은 원자번호가 망간족에 속하는 43번 원소로서 주기율표에서 망간 바로 아래에 있고 레늄 바로 위에 있는 전이원소이다. 따라서 화학적으로 망간이나 레늄과 유사한데 망간보다는 레늄과 더 가깝다.

또한 여러 가지 동위원소가 존재하는데 안정 동위원소는 없고 모두 방사성동위원소이다. 그 중 테크네슘-98이 반감기가 420만년으로 가장 길다. 지구의 나이가 42억년이라고 보면 반감기가 천번이 지나갔다고 볼 수가 있는데 이를 계산하여 보면 지구가 처음 생길 때 테크네슘-98이 많이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아니 지구가 통째로 테크네슘-98로 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지구상에 생명체나 인류가 나타날 무렵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 과학자들이 주기율표를 제작하기 위하여 원소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테크네슘 칸만은 오랫동안 빈 칸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원자로 같은 시설이 생기고 난 다음에 겨우 테크네슘이 발견되었는데 테크네슘이라는 이름도 사람이 기술 즉, 테크닉을 써서 만든 원소이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따라서 테크네슘은 원래 생명체의 진화과정에 전혀 참여를 하지 못한 원소라고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원소가 인류의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만들어져서 인류의 건강을 위하여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든다.

2004년 6월 21일

13. 방사성의약품은 위험하지 않은가

방사성의약품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선입견은 방사선 때문에 혹시 위험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은 위험과는 거리가 멀고,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은 원칙대로 사용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극미량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방사성의약품으로 인체에 투여하는 것은 실제로는 생리식염수가 대부분이고 방사성동위원소 자체는 극미량이다. 수 나노그램 정도가 1인분인데 이는 1그램의 10억분의 일에 해당한다. 이렇게 극미량을 체내에 투여하여 체내의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추적자라고 한다. 즉 진단용으로 체내에 투여하는 방사성의약품은 모두 추적자라고 볼 수가 있다.

추적자라고 하면 사람의 질병의 진단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많이 사용할 수가 있다. 무어 박사는 1996년 지하수 속에 함유된 'Ra-226'을 추적자로 이용하여 미국동부 대륙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물 중 해저지하수 유출량이 강물 유출양의 약 40%가 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동식물 표본 속에 남아 있는 '탄소-14'의 양을 측정하여 그 표본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밝혀내는 탄소연대측정법은 고고학적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추적자로 체내에 투여하는 방사성의약품의 경우 물질 자체에 의한 독성은 없고 단지 방사선만 주의하면 된다. 그런데 보통 진단용으로 사용하는 방사성의약품에 의해 환자가 받는 방사선의 양은 보통 병원에서 많이 찍는 흉부 X-선 촬영보다 적으므로 걱정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에는 방사성의약품 사용을 금지하거나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태아나 신생아는 방사선에 비교적 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은 특히 용량을 주의해서 투여하여야 하는데 이는 과량 투여시 방사선에 의한 독성이 나타나고 소량 투여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반감기가 짧은 것을 사용한다. 반감기란 그 물질이 반으로 줄어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서 모든 방사성동위원소는 반감기를 가진다. 진단용으로 사용하는 방사성의약품의 반감기는 수 시간 정도가 대부분이고, 짧은 경우는 수 분이고 길면 수 일이 될 수도 있다. 반감기가 수 일이 되는 경우는 대체로 치료용으로 사용을 한다. 왜냐하면 너무 짧은 반감기의 방사성의약품으로는 치료 효과를 충분히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은 방사선에 의한 부작용이 있을 수가 있지만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에 의한 부작용은 원래 용량의 수 십배에서 수 백배의 과량을 투여하지 않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셋째, 인체내의 방어기전을 들 수가 있다. 생명체는 진화의 초기 단계부터 방사선에 대한 방어 기전을 발전시켜 왔다. 왜냐하면 방사선이란 항상 생명체와 같이 존재하면서 생명체를 공격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방사선에 대한 방어기전이 잘 발달한 생명체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한 방사선에 어느 정도 노출되면 오히려 방사선에 대한 저항력이 커져서 암이나 백혈병 발생률이 줄어든다는 보고도 많이 있다.

넷째, 방사성의약품은 잘 훈련된 인력이 있고 특수한 시설을 가진 병원에서만 투여한다. 방사성의약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의료장비와 방사성동위원소 사용시설 등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러한 시설을 할 수 있는 곳은 대형 종합병원 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사용자의 수가 제한적이고 국가적인 관리도 비교적 쉽다. 물론 의도적인 범죄행위나 사고에 의한 경우도 있을 수도 있으므로 주의를 하여야 한다.

몇 년전에 모 병원에서 암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잃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매스컴에도 보도된 떠들썩한 사건이었는데 결국 범인이 강변에 갖다 버린 방사성동위원소를 방사선 탐지 장치를 이용하여 전량 회수하여 다행히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암 치료에 사용하는 방사성동위원소는 방사능이 상당히 강하여 직접 손으로 만진다든지, 삼킨다든지, 주머니에 넣고 돌아다닌다든지 하면 방사선장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치료에 사용하는 강한 방사능을 가진 선원의 사고에 의한 특별한 경우이다. 방사성의약품은 이러한 암치료에 사용하는 방사성동위원소보다 훨씬 적은 극미량의 방사능을 쓰기 때문에 위험성과는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6월 14일

12. 제너레이터의 국산화

지난주에는 테크네슘 제너레이터가 개발됨으로써 이러한 동위원소를 경제적이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테크네슘 제너레이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몰리브덴-99가 있어야 한다. 이는 몰리브덴-98을 원자로에 넣으면 중성자를 하나 흡수하여 몰리브덴-99가 만들어지지만 이렇게 만든 몰리브덴-99는 방사성동위원소가 아닌 몰리브덴-98이 다량 섞여 있다.

이렇게 몰리브덴-98처럼 방사성동위원소에 섞여 있는 안정동위원소를 '캐리어'라고 하고 캐리어가 많이 섞여 있을수록 단위 질량당 방사능 즉, 비방사능이 감소하게 된다원자로 속에서 몰리브덴-98이 몰리브덴-99로 변하는 비율은 매우 낮아서 대부분의 몰리브덴은 비방사성인 몰리브덴-98로 존재하고 이 때문에 비방사능이 낮아지는 것이다.

비방사능이 낮은 몰리브덴-99를 흡착하려면 다량의 알루미나가 필요하고, 따라서 제너레이터 내부에 들어가는 알루미나 칼럼이 커야 하므로 제너레이터 크기가 너무 커져 실용화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피션몰리 (fission moly)'라는 것이 개발됐다. 피션몰리는 우라늄-235가 분열한 생성물에서 화학적인 공정을 거쳐 몰리브덴-99만을 순수하게 뽑아내는데 여기는 몰리브덴-98이 섞여있지 않다. 따라서 매우 비방사능이 높고 이를 이용하면 아주 작은 알루미나 칼럼을 사용하여도 제너레이터를 만들 수가 있다.

이러한 피션몰리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피션몰리를 생산하지 못한다. 피션몰리를 생산하는 나라에서는 이를 이용한 테크네슘 제너레이터를 만들 수가 있는데, 피션몰리를 못 만드는 나라도 이를 수입하여 제너레이터를 생산할 수가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거의 30년 전부터 테크네슘 제너레이터를 생산하여 자국내에도 사용하고 수출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한 중소기업에서 러시아에서 피션몰리와 제너레이터 제조 기술을 도입하고 원자력연구소에 장소를 임대하여 2004 4월에 국산화에 성공하는 개가를 올렸다. 일본이 국산화한지 30년이나 되었고 중국도 벌써부터 생산하고 있었는데 지금 국산화가 된 것은 상당히 늦은 감이 있으나 어쨌든 우리나라 핵의학과 방사성의약품 발전을 위하여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가 있다.

러시아에서 제너레이터 기술을 도입할 때 국내 제너레이터와 방사성동위원소 수요에 대한자문역할을 하기 위하여 2002 1월에 모스크바에 갔다. 한 겨울이었는데 러시아의 여러 연구소를 둘러보니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나이 많은 과학자들만 먼지 앉은 실험기구로 꽉 찬 연구실을 지키고 있었다. 경제가 나빠지니 젊은 과학자들은 모두 외국으로 나가든지 다른 돈벌이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이공계 위기가 오랫동안 계속되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섬뜩하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로 난 고속도로로 오브닌스크라고 하는 작은 도시로 이동하였다. 우리가 탄 러시아제 승용차 소리가 매우 커서 상당히 빠른 것 같았지만 속도계를 보니 시속 90km 밖에 되지 않는다. 간혹 BMW, 벤츠, 현대 소나타 등이 바로 옆을 쏜살같이 앞질러 가는데 시속 120km 정도는 내는 듯싶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저녁 파티를 열어주었다. 이 사람들은 돌아가며 한 사람씩 일어나 보드카를 앞에 치켜들고 인사말과 자기소개를 한참 하고 보드카를 그냥 목구멍 속으로 탁 털어 넣어 최대한 빨리 바로 위장 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시니 식도에서 타들어가는 느낌이 훨씬 약하고 대신 뱃속이 바로 뜨끈뜨끈해져서 추위를 빨리 쫓는데 효과적인 것 같았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원샷을 하는 것이어서 사람이 10명 쯤 되니 10잔이 기본이었다. 보드카 잔은 양주잔 비슷하게 생겼는데 크기가 조금 더 크다. 그래서 미치는 줄 알았다. 러시아의 술 소비량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보드카에 만취해 크레믈린이 있는 붉은 광장에 나가니 깜깜한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에서 보던 그 아이스크림처럼 생긴 성 바실리카 교회가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고, 까만 하늘에서는 얼음 조각 같은 눈이 반짝거리며 부스러져 내렸다. 현재는 러시아가 오랜 공산주의의 여파로 경제가 나빠서 국제적인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이제 시장경제를 도입하였고 수많은 첨단기술과 막대한 석유 등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얼마 안 가서 경제를 회복하고 다시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것이 틀림없다. 그 때를 위하여 '우리나라는 과거 스탈린 시대 때부터 맺은 잘못된 인연을 끊고 앞으로는 좋은 인연을 이어 나가야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6월 7일

11.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드는 법- 제너레이터

지금까지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드는 방법에 원자로와 사이클로트론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원자로는 건설하려면 수 천억원 이상의 투자가 있어야 하고 가동 인원도 최소한 수십명이 있어야 한다.

사이클로트론은 수십억원 정도 하지만 방사성의약품을 만들기 위하여 병원에서 도입하기에는 큰 부담이 된다. 그런데 1∼2주일동안에 50만원 미만을 투자하여 수백명의 환자를 진단할 수 있는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어 내는 장치가 있다. 이는 실제로 병원에서 사용하는 동위원소를 만드는 방법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으로서 제너레이터(generator, 발생기)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제너레이터로 만드는 동위원소 중 대표적인 것은 테크네슘-99m (Tc-99m)이다. 이는 순 감마선만 방출하여 투과력이 강하고 독성이 약하여 영상용으로 적당하다. 또한 반감기가 6시간 정도여서 인체에 투여 후 하루만 지나도 1/16로 줄어들기 때문에 인체에 대한 피폭선량이 적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반감기 때문에 많이 만들어 저장해두고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제너레이터이다.

몰리브덴-99 (Mo-99)는 반감기 67시간으로 붕괴되어 테크네슘-99m으로 되고, 테크네슘-99m은 반감기 6시간으로 붕괴되어 테크네슘-99로 된다. 이 사실에서 몰리브덴-99가 있으면 항상 이것이 붕괴되어 테크네슘-99m이 생성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필요한 테크네슘-99m은 반감기가 짧아서 저장해 두고 사용할 수가 없지만 그 앞의 몰리브덴-99는 반감기가 더 길기 때문에 1∼2주일 정도 보관해 두면서 여기서 생산되는 테크네슘-99m을 뽑아 쓸 수 있게 만든 장치가 제너레이터이다.

제너레이터는 <그림>처럼 방사선 차폐를 위한 납통 안에 알루미나로 된 칼럼을 넣고 여기에 몰리브덴-99를 올려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면 몰리브덴-99는 테크네슘-99m과 같이 섞여서 존재하게 된다. 여기에 생리식염수를 흘려주면 테크네슘-99m은 생리식염수에 녹아서 나오고 몰리브덴-99는 알루미나 칼럼에 강하게 흡착되어 빠져 나오지 않으므로 테크네슘-99m만 뽑아서 사용할 수가 있다.
또 다른 여러 가지 제너레이터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최근에 개발된 레늄-188 제너레이터가 있다. 이는 모핵종이 텅스텐-188로서 반감기가 69일이나 되기 때문에 짧으면 4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 사용할 수가 있다. 레늄-188은 반감기가 17 시간인 베타선 방출 핵종이어서 진단용으로는 사용을 못하고 치료용으로 사용하기에 적당하다.

이러한 제너레이터의 모핵종으로 사용되는 몰리브덴-99나 텅스텐-188은 원자로에서 만들고 또 다른 제너레이터의 경우 사이클로트론에서 만들기도 하므로 근본적으로는 제너레이터도 원자로나 사이클로트론이 있어야만 제작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6월 3일

10. PET용 사이클로트론의 도입

1994년에 서울대학교병원에 PET 전용 사이클로트론이 도입이 되었다. 사이클로트론의 가장 중요한 규격은 가속 양성자 빔의 에너지로 표현하는데 그 전에 원자력병원에 도입된 것은 50 MeV였고, 서울대병원에 도입된 것은 13 MeV였다.
에너지가 높을수록 생산할 수 있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종류가 많아지는데, 예를 들면 13 MeV 사이클로트론은 양전자방출핵종인 불소-18, 탄소-11, 산소-15, 질소-13만 주로 만들고, 에너지가 30 MeV를 넘어가면 양전자방출핵종 뿐만 아니라, 요드-123, 탈륨-201, 갈륨-67, 인듐-111 등 여러 가지 다른 핵종도 만들 수가 있다. 따라서 PET만을 위해서는 가격이 비교적 싼 낮은 에너지의 사이클로트론이면 되는 것이다.
PET를 하려면 PET를 찍는 장치인 PET스캐너와 양전자 방출 방사성의약품 생산을 위한 사이클로트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의 'PET센터'를 지을 때 PET스캐너는 계획대로 도입이 되어 설치가 끝났는데 사이클로트론은 캐나다의 제작회사에서 문제가 생겨 계획보다 훨씬 늦어지게 되었다.
나는 사이클로트론 도입 계획이나 계약 등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어서 전혀 관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 차질은 나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이클로트론으로 생산되는 방사성의약품 공급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이러한 사이클로트론의 설치 차질은 나의 책임으로 보이는 것 같아 매우 불안하였다.
계획된 PET센터 준공일은 다가오는데 사이클로트론은 이제 겨우 병원에 도착한 상태였다. 사이클로트론은 매우 복잡한 기계여서 설치에만 4개월 이상이 걸린다. 가만히 계산해보니 PET센터 준공일까지 아무리 해도 사이클로트론을 가동할 수가 없어서 PET센터 준공기념식 때는 우리가 찍은 PET 영상이 아닌 PET스캐너 공급회사에서 제공한 PET영상만 전시하게 될 것이 뻔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이클로트론이 설치되어 있던 원자력병원에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꼭 필요한 불소-18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고맙게도 원자력병원에서는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문제는 원자력병원에서는 그 때까지 불소-18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불소-18을 만들기 위해서는 액체를 넣어서 사이클로트론에서 나오는 양성자 빔을 조사할 수 있는 액체 타깃이 필요한데 원자력병원에서는 그 때까지만 해도 액체 타깃을 만들어 본 적도, 설계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서울대병원의 사이클로트론 제작사가 있는 캐나다의 밴쿠버에 가서 원자력병원의 사이클로트론에 장착할 수 있는 액체 타깃을 급히 만들어 가지고 왔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캐나다의 사이클로트론 제작회사의 책임이 컷기 때문에 자기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모든 경비를 부담해 주었다. 원자력병원의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은 처음 보는 액체 타깃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불소-18을 만드는 실험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이는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원자력병원의 사이클로트론에서 나오는 양성자 빔의 에너지가 너무 커서 그 것을 줄이는 문제와 이 빔을 정확하게 타깃에 명중시키는 문제, 타깃에 맞는 빔의 양 측정 등은 우선 해결했지만, 빔을 쬐는 동안에 타깃 내부의 압력이 너무 올라가고, 불소-18이 생각보다 적게 만들어지며, 만들어진 불소-18이 제대로 회수가 안 되는 등 수많은 문제에 봉착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병원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은 여러 날 밤샘을 해가며 실험을 진행시켰는데, PET센터 준공을 겨우 사흘 앞두고 성공을 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사이클로트론 회사에서 타깃을 제작할 때 기계로 가공하면서 윤활유를 칠하는데 이 윤활유를 세척제로 완전히 제거를 하지 않고 불소-18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윤활유가 양성자 빔을 맞으면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온갖 불순물이 타깃 속에 생성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만든 불소-18을 서울대병원에 가지고 와서 방사성의약품을 합성하고 이를 이용하여 국내 최초의 PET를 뇌종양 제거 수술을 한 환자에 시행하였다. 그 결과 이 환자는 불행하게도 뇌종양이 재발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고, 이는 동시에 촬영한 MRI로서는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이어서 PET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되었다.
또 다른 몇 건의 PET 촬영을 하여 우리가 직접 찍은 PET 영상을 전시하여 PET센터 준공식은 구색을 갖춰 마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많은 노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던 원자력병원의 사이클로트론 연구원과 기술자들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2004년 5월 18일

9.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드는 법 - 사이클로트론

원자로 다음으로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드는 방법으로 사이클로트론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사이클로트론은 진공으로 된 통의 양쪽에 큰 전자석이 놓여 있고 내부에는 속이 빈 전극에 고주파전압이 걸려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전극의 모양이 D자 모양으로 생겨서 '디즈(dees)'라고 부른다.
사이클로트론의 가운데 부분에 수소, 헬륨 등의 가스를 넣으면서 고전압을 걸어주면 전자를 잃어버려 양전하를 띤 원자핵이 생성되고 이는 가운데서부터 바깥쪽으로 회전운동을 하며 자석과 전기에 의하여 가속이 되고 결국 사이클로트론 밖으로 튀어 나오게 된다. 여기에 적당한 물질을 두면 가속된 원자핵이 충돌하면서 방사성동위원소가 만들어진다, 양전기를 띤 입자가 다른 원자핵 속에 들어가게 되므로 양성자가 과다한 방사성동위원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앞에서 설명한 Z-N 커브의 C D에 해당하는 동위원소가 만들어지는데 예를 들면 요드-123, 인듐-111, 탈륨-201 등이 C에 해당하여 감마선을 방출하고 불소-18, 탄소-11, 질소-13, 산소-15 등이 D에 해당하여 양전자선을 방출한다. 이들은 모두 인체를 잘 통과하고 생명체에 대한 독성이 약하여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의 표지에 사용한다.
사이클로트론
우리나라에는 원자력병원에 1986년에 처음으로 사이클로트론이 설치되었으나 중성자를 이용한 암 치료에만 사용하다가 1989년에 처음으로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사이클로트론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되기 시작한 것은 양전자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이 보급되면서부터이다. PET는 핵의학의 최첨단 영상분야로서 이를 하려면 양전자 방출 핵종으로 표지된 방사성의약품이 있어야 한다.
PET 1994년 서울대학교병원을 필두로 같은 해에 삼성서울병원에 설치되었고, 그와 동시에 사이클로트론도 양 병원에 설치가 되었다.
그 때만 해도 가격이 20~25억원을 하여 사이클로트론의 도입이 별로 늘지 않았는데, 2003년에는 거의 10억원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고, 게다가 사이클로트론 회사들이 PET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무료에 가깝게 공급을 해 주는 바람에 급격히 여러 병원에서 도입을 서둘렀다.
또한 원자력의학원에서 사이클로트론의 국산화에 성공하여 과학기술부에서는 전국에서 골고루 PET를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권역별로 국산 사이클로트론을 설치해 주고 있다.

2004년 5월 11일

8. 방사성동위원소 만드는 법 - 원자로

방사성동위원소는 원자핵 속에 중성자 또는 양성자 중 어느 한 쪽이 너무 많아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설명하였다. 따라서 자연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안정동위원소의 원자핵에 인위적으로 중성자나 양성자를 넣어 주면 방사성동위원소가 만들어 질 것이다. 이러한 장치로 대표적인 것이 원자로와 사이클로트론이다.
원자로는 우라늄-235와 같은 핵연료가 핵분열을 일으키면서 중성자와 에너지를 방출하고 이 때 생성된 중성자에 의하여 다른 원자핵이 분열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나도록 하는 시설이다.
이때 생성되는 열을 이용하여 발전을 하는 것이 원자력발전소이고, 생성되는 중성자로 각종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드는 것이 연구용원자로이다.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소는 주로 울진, 월성, 고리, 영광 등 해안지대에 있으나 연구용원자로는 대전의 원자력연구소에 1995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하나로'라는 원자로 1기가 있다. 원래는 서울에 트리가마크라고 하는 원자로가 있었지만 하나로가 가동되면서 가동이 중단 되었다.
원자로에서는 물질의 원자핵 속에 중성자를 넣어 주어 중성자가 과잉인 핵종을 만들어 준다. 따라서 베타선 또는 베타선과 감마선을 동시에 방출하는 핵종을 주로 만든다.
예를 들면 요드-131, 탄소-14, -32, 몰리브덴-99, 홀뮴-166, 레늄-186 등이 있는데 이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보다 중성자가 하나 적은 동위원소 즉 요드-130, 탄소-13, -31, 몰리브덴-98, 홀뮴-167, 레늄-185 등을 원자로 속에 넣어 주면된다.
먼저 이야기하였다시피 베타선을 방출하는 핵종은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이렇게 만든 방사성동위원소 중 요드-131, -32, 홀뮴-166, 레늄-186 등은 실제로 갑상선암, 진성적혈구증다증, 간암, 뼈 전이암 통증 치료 등에 사용을 하고 있다. 물론 원자로에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방법으로 다양한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어 낸다.
원자로 안에서 만들어지는 중성자는 인체에 독성이 강하므로 외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차폐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
또한 핵분열시 나온 중성자는 속도가 너무 빨라 그 다음 핵분열을 일으키지는 못하여 속도를 줄여 주어야 한다. 감속을 한다고 하면 납과 같은 무거운 물질을 얼핏 떠 올린다.
그런데 중성자는 양성자와 질량이 거의 같고 전기를 띠지 않아서 납과 같은 무거운 원자핵과 부딪히면 당구대에 부딪힌 당구공처럼 완전탄성충돌을 하여 그 속도가 거의 줄어들지 않으므로 감속이나 차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수소 원자핵처럼 가벼운 원자핵과 부딪히면 당구공에 부딪힌 당구공처럼 튀면서 멈추거나 속도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중성자를 차폐나 감속하려면 가벼운 원자핵을 가진 물질로 주변을 둘러싸야 하는데 이때 보통 물로 둘러싼 것을 경수로라고 하여 한국, 미국 등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방법이다.
중수소로 된 물로 둘러싼 것을 중수로라고 하여 아주 낮은 우라늄-235 농도를 가진 핵연료도 사용이 가능한데 캐나다에서 개발된 방법이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사용한다.
탄소원자로 된 흑연으로 둘러싼 원자로를 흑연로라고 하는데 구소련, 북한 등 공산국가에서 주로 사용되던 방식으로서 열효율이 낮아 발전량에 비하여 사용 후 핵연료 폐기물의 발생이 많아서 현재는 거의 건설되지 않고 있다.
북한도 흑연로의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에 한국이 경수로를 건설해 주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가 잘 해결되어 이러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면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에너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04년 5월 3일